매일신문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300년 동안 유럽이 본 한국

이지은 지음/ 책세상 펴냄

서울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은 참 기괴하다. 영아를 잇따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프랑스인 베로니크 부부의 진실이 그렇고, 이 사건을 미개한(?) 한국의 착오나 음모로 여긴 프랑스 사회의 반응이 그랬다.

우리는 프랑스 사회가 첨단 정보기술(IT) 강국,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을 자랑하는 한국을 DNA 검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낙후된 나라로 생각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있다. 1996년 대우가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려 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은 프랑스 전자산업의 상징기업을 후진국에 매각하는 것은 치욕이라며 들고있어났다. 결국 매각은 무산됐다.

왜 그럴까.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한국이 이처럼 평가절하된 원인이 궁금하다. 인천대 독문과 이지은 교수는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에서 유럽인에 의해 전유되고 날조된 한국에 대해 체계적인 역사적·담론 분석을 최초로 시도했다.

한국을 어둡고 고요한 보물섬으로 묘사한 '새 중국 전도(1655년)'나 방탕한 성문화와 미신, 무지가 지배하는 야만의 세계로 그린 '하멜 표류기(1668년)'는 17세기 유럽인들에게 상상과 허구에 근거한 한국관을 만들어냈다.

이후 유럽인들은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객관적 담론을 확대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관찰과 분석을 무기로 객관적 권위가 부여된 이 같은 담론은, 그러나 젓가락과 칼을 '식사용 수저'로, 세숫대야와 요강을 '식기'로 이해하면서 우리의 문화적 맥락을 배제한 채 파악되지 않은 여백을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채워 나갔다.

이로 인해 온돌문화는 고집 세고 게으른 민족성의 원인이 돼 버렸다. '장옷을 입은 여자'에서는 폐쇄적이며 고립된 이미지를, 원시적 도구를 사용하는 '지게를 진 남자'에서는 미개한 이미지를 재현했다.

이 과정에서 인종적으로 우월하고 문명화된 유럽만이 가난한 미개인으로 사는 한국인을 문명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주체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 같은 담론들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법화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결말에 도달한다.

유럽인들은 한국인의 민족성과 정치, 경제, 문화, 풍속 등 거의 모든 면을 제멋대로 재현하고 왜곡했으며 심지어 조작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중심적인 한국관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날조된 유럽인의 한국관이 우리 정체성의 한 부분이 돼 버렸다.

우리가 외국인을 대할 때 그들의 피부색깔과 출신국의 빈부 정도에 따라 현저히 이중적, 차등적으로 대하는 것은 유럽인들이 만든 거울속에 일그러진 모습을 그대로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내재화함으로써 스스로를 비하하는 식민지 근성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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