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
1980년대 초 영국의 팝그룹 버글스가 부른 경쾌한 리듬의 이 노래는 라디오시대의 몰락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화려한 비디오시대가 전개되면서 라디오는 죽었고 '라디오 스타'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 제목을 차용한 영화 '라디오스타'에서처럼 라디오DJ는 끈질기게 목소리만으로 우리 곁을 지켜왔다.
하긴 라디오는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라디오스타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혹시라도 전화가 연결돼 내 목소리가 방송을 타기라도 한다면 그날은 운수대박이었다.
'교통방송'이 생긴 이후 하루종일 운전대를 잡고 있는 택시나 버스기사들에게 라디오는 단 한순간도 뗄 수 없는 마약 같은 존재, 혹은 '마누라'이기도 했다. 라디오를 켜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라디오를 듣지않으면 왠지 불안하기만 했다. 라디오는 또 아련한 추억일지도 모른다. 최신팝송이 흘러나올지라도.
영화 속에서 라디오스타는 퇴물가수였다. 그는 차 배달나온 김 양을 생방송에 출연시키는 방송사고를 쳤다. 하긴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시대에 다방아가씨 '김 양'의 존재 자체가 라디오의 운명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대구에도 라디오스타는 있었다. 코리아, 해오라기, 에뜨랑제, 행복의 섬, 하이마트 등 5, 6개의 음악감상실이 즐비하던 대구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최고의 음악도시였다. 전국DJ경연대회가 열린 곳도 대구였다. 다운타운가나 음악감상실에서 레코드판을 돌리던 DJ들은 방송에 진출, 진정한 '라디오스타'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78년 대구KBS FM, 83년 대구MBC FM이 개국하면서 라디오DJ들은 스타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대희 씨는 "당시 대구에서는 라디오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스타로 떴고 준연예인 대접까지 받았다."고 회상한다. '서울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중앙의 목소리만 되뇌지 않고 대구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라디오프로그램과 라디오DJ의 인기는 최고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무대 뒤로 사라졌다.
영화 '라디오스타'에서처럼 인기가수도 아니었고 고스톱 룰을 가르쳐주거나 외상값을 값도록 하는 전지전능함은 없지만 20여 년간 라디오만 고집하고 있는 라디오DJ들. 그들이 진정한 라디오스타가 아닐까. 대구 MBC의 '이대희의 골든디스크'(오전 11시~12시)를 진행하는 이대희 씨와 대구교통방송의 '낭만이 있는 곳에'(오후 10시~12시)의 김병규 씨가 그들이다.
온갖 정성을 들여 꾸민 예쁜 엽서로 음악을 신청하던 풍경은 사라지고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로, 실시간 문자로 음악을 신청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애틋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방송에 접속, 자신들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얘기한다. 라디오스타는 그런 그들의 이야기들을 1대1로 대화하듯이 이끌어 내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이웃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기꺼이 공감한다. 이제 라디오를 통해 소통하는 DJ와 청취자 그들 모두가 라디오스타가 되는 시대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