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한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51)은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다. 재경부 7층 그의 집무실 한쪽 벽에는 국회 일정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국회에서 부랴부랴 사무실로 달려온 참이었다. 인터뷰 중간 책상 한 켠에 있던 휴대전화기는 쉴새없이 울려댔다.
그가 맡고 있는 직책상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부처내 온갖 굳은일이 집중되는데다 대 국회관계 일까지 책임지고 있기 때문.
"국회의원 개개인들이 헌법기관 아닙니까. 과거같이 국회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한목소리를 내주면 괜찮은데 이제는 제각각입니다.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해 한 방향으로 조율해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힘든 일입니다."
유 실장은 대구·경북 출신 재경부 공무원 중 맏형이다. 현재 재경부 대구·경북 출신 중 과장급 이상은 모두 4명. 국장급 이상도 유 실장과 권혁세 재산소비세제 국장 등 2명 뿐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지난 78년 재무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대구·경북 출신들이 이렇게 빈약하지는 않았다. 김만제, 사공일 장관 시절에는 내부 모임에만도 십수 명이 참석했단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영남출신들의 자존심을 지킬만한 규모는 됐던 모양.
그는"원래 대구·경북사람들이 경제 쪽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해서 상업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유교 문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구도 섬유산업이 무너지고 난 후 큰 부자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런 주변환경이 경제부처에 몸담고 있는 그에게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는 "경제계에 대구 사람이 없는 것이 좋을리야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친분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하기도 편하고..."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재경부에서 그는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사무관 시절부터 금융업무에 정통했던 탓에 지난 97년 IMF위기 때는 실무수습 책임을 도맡았다.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실 과장으로 강경식 재경부 장관,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윤증현 재경부 금융정책실장 등의 대책모임을 뒷바라지 했다. "당시 경제수장들의 개인적 능력은 뛰어났습니다. 단지 운이 안좋았지요. IMF가 터지려니 기아자동차 사태와 홍콩발 외환위기까지 겹친 겁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외환위기 뒤에는 수습책임이 맡겨졌다. 산업자원과장, 은행제도과장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는 일을 도맡았다.
"외환위기가 오기 전에 예금보험기금이나 부실채권정리기금 등을 만들기는 했지만 위기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후 이 기금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온 유 실장에게도 대구는 걱정거리다. 경북대 의대 교수를 지낸 부친 유호열 박사가 대구에서 간기능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대구를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대구에 대해 별로 반가운 소식을 접하지 못해 안타깝다.
"재경부내에서도 그동안 한두차례 대구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어요. 요즘 대구·경북 상생협력 얘기가 들리는데 미력하지만 대구를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합니다."
부동산 값 폭등 문제도 그의 고민거리다. 그는 "대구 입장에서는 요즘 수도권 부동산 값 폭등이 딴 나라 얘기 같이 들릴 겁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 수요 억제와 공급확대, 거래투명성이라는 부동산 대책의 골격을 결코 양보할 수 없습니다. 단기적으로 가격 하락까지 전망할 수는 없지만 중기적으로는 반드시 정책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출생 했지만 그는 영락없는 대구토박이다. 대구 동덕초와 경대사대부설 초등학교를 다녔고 경북중· 고를 나왔다. 집안에서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사무관 시절에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연수와 월드뱅크 근무 기회도 있었다. 그는 "어릴때는 영락없는 '범생'(모범생)이었다."면서도 "하지만 어려운 시기때마다 바른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고 인터뷰를 맺었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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