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넘길 수 없다는 울음 섞인 최유미(29·가명) 씨의 말이 지난주 내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유미 씨의 사연(11월 29일자 10면 보도)을 취재한 뒤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최 씨는 올해 입사한 취재기자보다 겨우 3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월을 고생한 것도 모자라 올 겨울을 넘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돕고 싶은데, 수술을 받게 해 살리고 싶은데 5천만 원은 너무나 큰 돈이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어느 때보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수십통의 전화를 받았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2일 저녁 퇴근 길.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독한 약 탓에 갈라지고, 중성적인 유미 씨의 들뜬 목소리. "정 기자님, 수술 날짜가 잡혔어요. 수술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취재를 하면서 오랜 시간 만나고 몇 번의 통화에서도 처음 듣는 밝은 목소리였지만 저의 무거운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4일동안 모은 성금은 모두 3천만 원. 아직 2천만 원이 모자랐습니다.
순간, 유미 씨는 기적과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수술 예치금으로 2천만 원을 주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유미 씨를 취재할 때도, 기사를 쓸 때도 꾹 눌려 있던 눈물이 그제야 흘러내렸습니다. 그저 모든 분께 "고맙습니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이렇게 전화주셨습니다. "돈이 없어 100만 원밖에 못 부쳤어요. 유미 씨는 아직 괜찮죠. 날씨가 추워지니까 더 걱정이 돼서요. 꼭 살려주세요. 내 딸 같아서…. "라며 마지막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미안하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꿀벌사나이 안상규 씨도 전화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유미 씨가 회사 직원의 친구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직원이 유미 씨의 기사가 실린 매일신문을 보며 막무가내로 울고 있길 래 물어보니 유미 씨가 전화를 해 올 겨울을 넘기기 힘들겠다며 늦기 전에 여행이나 한 번 가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습니다. 안 씨는 "살릴 수 있는 생명이 돈이 없어 죽어가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며 1천만 원을 내놓았습니다.
은행으로 달려가 이체 통장을 확인하니 하루 만에 500만 원이 넘는 돈이 쌓여 있었습니다. 유난히 많은 무기명과 익명들. 그 이름들이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진 것은 맹세코 처음입니다. 다음날엔 긴급복지지원자금을 신청해 300만 원을 추가로 확보했고, 한국심장재단에서는 800만 원의 수술비를 전달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고교생이라고 밝힌 학생은 이메일을 통해 "헌혈증서도 필요할 것"이라며 주소를 물어왔고, 한 의사는 "한방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이렇게 4일동안 기적같이 3천만 원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익명의 독지가가 수술 예치금 2천만 원을 내는 것으로 기적을 마무리를 했습니다.
유미 씨는 내년 1월 6일 수술대에 오르게 됩니다. 유미 씨는 무료결혼식이 있으면 꼭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퇴원하면 여러분이 주신 사랑을 메이크업 자원봉사나마 꼭 돌려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29살의 맑은 미소가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웃었습니다.
"4일간의 기적은 여러분의 사랑으로 가능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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