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골수이식 수술비 없는 백혈병 희원군

햇볕 한움큼이 겨우 들어오는 2평 남짓한 방, 항암제에 취한 아들 희원(가명·16)이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습니다. 희원이는 힘겹게 눈을 뜨고는 "답답해. 창문을 좀 열어줘."라고 말합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희원이에게 '독'이 된다는 걸 알기에 못들은 척 방을 빠져 나옵니다.

올 해가 가기 전 이 집마저 비워줘야 한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4년 전, 남편(47)은 운송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았고 이 집마저 그 여파에 휩쓸리게 됐습니다. 골방에 갇힌 채 병마와 싸우고 있는 희원이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인데 말입니다.

희원이는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희원이는 갑자기 계단을 오르지 못했고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은 후 무균실로 보내졌지요. 아들은 고맙게도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고 무균실에서의 두 달을 눈만 깜박인채 견뎌냈습니다. 결코 좌절하지 않던 아들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모든 치료를 받아냈습니다.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던 승부욕 강한 희원이는 결국 백혈병이 완치됐다는 의사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정말 잠시 우리곁에 머물렀습니다.

사업부도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남편은 빚쟁이들을 피해 한달에 한번씩 아들을 보러 오곤 했습니다. 아들 병원비를 마련하겠다며 몰래 화물운전을 했던 남편은 희원이의 완치를 전하려던 그날 밤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며 3시간도 채 눈을 붙이지 않았던 그이가 졸음운전을 했다고 하더군요.

불행은 한꺼번에 쏟아졌지요.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불안했습니다. 건강을 찾은 희원이에겐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뭔가 위태로워 보였고 비켜가길 바랐던 모든 느낌이 현실이 돼버렸습니다. 완치 판정을 받은 지 한 달만에 희원이의 백혈병이 재발한 것이죠. 그래요, 허망합니다. 왜 우리 가족이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싶습니다.

한 달전 우리 모자의 유일한 안식처가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17평 집이 1천700만 원이라는 헐값에 팔렸습니다. 빚은 고스란히 남았고 이번 겨울, 우리는 집을 비워줘야 합니다. 찬바람 속에 죽어가는 아들을 안고 길거리로 나와야 한다는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아들을 재우고 밤새 울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희원이에게 꼭 맞는 골수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희원이를 살릴 유일한 길이 골수이식인데 저희에겐 수술비 2천만 원이 없습니다.

5일 오후 경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만난 김미주(가명·52·여) 씨는 모든 색소가 사라진 듯 창백한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입술 곳곳에 엉겨붙은 피딱지를 보여주기 싫다는 표현이었다.

김 씨는 "아들에게만은 아빠 얘기를 하지 말아 달라."며 "아빠를 무지 따랐는데 그렇찮아도 요즘 자기를 보러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린다."고 말했다.

175cm의 키에 몸무게는 불과 50kg. 희원이는 요즘 부쩍 더 말라가고 있다. 크고 총명했던 희원이의 눈빛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수술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지"라고 묻자 "고교 입학을 앞두고 병원에 오게 됐는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방법이 보이질 않네요. 그래도 우리 아들 참 잘 생겼죠?" 김 씨는 끝내 참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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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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