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 그해 여름(2006, 조근식 감독)

이 영화는 40년 전 첫사랑의 이별곡을 사회적 알레고리로 보고 있다. 3선 개헌과 서슬 푸른 '공안정국의 한파'라는 사회적 상황이 개인의 사랑과 인생을 파멸시키고 말았다.

주인공 석영(이병헌)은 대학생이지만 뚜렷한 가치관이 없고, 세상에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외면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독립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앞에서는 변변한 구석이 없다. 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반항은 만취 상태로 아버지의 승용차에 구토물을 쏟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도전해오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농활을 떠난다.

농활 현장에서 정인(수애)을 만난다. 아버지가 월북한 '간첩의 딸'이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질경이처럼 끈끈한 생의 애착을 포기하지 않은 여자였다.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인생의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감을 철저히 억압하며 소외된 자의 홀로서기에 익숙한 정인과 의존적이고 대책 없는 미숙한 성격의 석영이 어떻게 서로 운명적인 사랑을 하였을까.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의존적 대상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소나기같이 쏟아지던 이들의 사랑이 미완성으로 남은 것은 사랑싸움이나 권태감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이념이나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두 사람은 정치적 '텔레스크린'(TV와 카메라 겸용)에 걸려들어 평생 상처를 떠안고 살아야 했다. 당과 권력이 텔레스크린을 통해 개인의 사상과 본능과 사랑마저도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해버리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석영과 정인의 사랑은 그렇게 갈라졌다. 사랑의 조건에는 사회적 여건도 단단히 한 몫을 한다.

정인을 떠나보낸 석영은 임포텐스(무기력, 성 불능)처럼 평생 독신으로 자기처벌적인 삶을 살았다. 아버지와 정치적 폭력을 피해가려다가 사랑까지 놓치고 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패배자의 말로라고 본다면 너무 무미건조한 것일까. 의존적인 대상을 찾아 현실도피적인 윤석영의 나약함이 한 여인의 외로운 망부가를 초래하고 말았다. 어쨌든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임은 분명하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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