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천주교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닥쳐올 부르심에 준비하라

누가 다녀갔을까? 이제는 이름조차 잊힌 사제들의 소박한 무덤에 꽃들이 놓여있다. 구태여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위령성월(11월)이 아니어도 성직자 묘지를 찾는 이들은 연중 끊이지 않는다. 성직자 묘지의 입구에는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죽음을 항상 잊지 말고, 삶을 제대로 살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닥쳐올 죽음을 떠올리면 매일마다 새롭게 부여받는 '오늘 하루'가 그야말로 신비한 은총의 하루임을 깨닫게 된다. 1915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초대 주교 안세화 주교가 조성한 대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는 치명자나 옥사자들이 묻힌 순교 성지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대교구 이래 조선에서 두 번째로 설정된 대구대교구를 키우고 만들어낸 안세화 주교를 비롯, 대구대교구에 부임해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국내외에서 선종한 성직자 66명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성지 중의 성지이다.

◈ 망자들이 우리를 위해 비는 곳

풍랑이 몰아치는 갈릴래아 뱃전 같은 이 땅에서 또 한해가 저물려고 한다. 해가 갈수록 빨리 달아나는 일년의 끝자락을 이십여일 앞두고 도심의 성지, 대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를 찾았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위령성월(11월)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기도하던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더니, 아기 예수의 탄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자 많이 줄어들었다.

대림 첫주일인 지난 3일, 영하의 바람이 불어대는 성직자 묘지에 들어서서 위령기도를 드리고 돌아나오려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오늘은 죽음이 나의 일이지만, 내일은 자네의 일일세. 단 하루도 허투루 살지 말게나." 앞서 선종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러 갔다가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위해 빌고 있음을 체험하고 돌아오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 공간이 바로 남산동 성직자 묘지이다.

◈ 죽음을 생각하며 겸손함 배워야

죽음은 예외도, 순서도 없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먼저 닥쳐올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남은 내생의 첫날이고, 신비의 샘인 셈이니 구정물로 살지 말아야한다. 교만, 인색, 음란, 분노, 탐욕, 질투, 태만 등 칠죄를 벗고,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진리의 눈을 떠서 기도하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성 아오스딩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이며, 현재속에 영원을 발견하는 사람이 인생을 극복한 사람이라고 했던게 아닐까.

지난달 30일 위령성월 마지막 날 오후 서너시, 교구청 성직자 묘지에서 만난 연세 지긋한 자매들은 "내가 영세받던 때 서품받은 신부님이 저기 묻혀 있으니 나도 이제 갈 때가 다 됐제. 먹고 살기에 바빠서 한 30년 쉬다가(냉담하다가) 왔으니 열심히 기도해야제. 위령성월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기와서 기도를 드렸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 그렇게 마음을 비우며 준비하는 자매들에게 하늘나라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까.

◈ 항상 깨어 준비하라

성직자 묘지 화강암 십자가에는 마태오 복음 24장 30절이 새겨져있다.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게 될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공심판(=최후의 심판)의 순간을 나타낸 복음구절이다. 참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재림하면, 악인은 불에 던져지고, 의인은 하느님의 나라로 불러가 태양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해?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다같이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초대받고도, 미련한 처녀들은 제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대구 성직자 묘지에는 대구대교구가 조선대교구(서울대교구로 이어짐)에서 떨어져나온 1911년 이래 지금까지 95년 동안 국내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선종한 66명의 성직자가 묻혀있다. 초대 교구장 안세화 주교, 문제만 주교, 서정길 대주교 등 교구장을 비롯, 전석재(전 대구가톨릭대 총장) 김경환(전 매일신문 사장) 이기수 이명우 몬시뇰, 이임춘(전 무학고 교장) 서인석(전 대가대 교수) 신부 등도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김수한 추기경의 형님이자 대구결핵요양원 운영에 헌신한 김동한, 촉망받는 사제로 생생철학을 공부하고 중국 선교 중에 갑작스레 임종 비보를 접하게 한 윤임규, 예비자들을 위한 대중적인 교리서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를 지은 박도식, 본당 신자들과 성지 순례를 떠나는 날 아침에 선종한 이윤걸 신부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 천주교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 조성 안세화 주교가 시작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15년이다.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기초자료집 4 '교구장 공문 및 문서'(초대부터~6대까지)에 따르면 지금부터 91년 전인 1915년 8월 23일 초대교구장 안세화 주교가 대구 남산동에 400평 크기의 성직자 묘지를 신청했고, 9월 3일 허가를 받았다. 가톨릭신문 창간 60주년 기념자료집 '드망즈 주교 일기'에도 안 주교가 4월부터 성직자 묘지를 찾기 시작했으며, 허가를 받아내는 데 테레사 수녀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1915년 4월 8일=묘지 인가를 받기 위해 곧 교섭을 벌일 것이고, 필요한 땅을 매입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1915년 8월 17일=묘지로 예정된 산이 결정되었다. 고아원이 개원되면 교우에게 맡긴 아이들도 그곳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1915년 8월 20일=경찰이 묘지조사를 하러 왔다. 나는 400평을 요청했다.

▲1915년 9월 4일=묘지 허가 증명서를 받았다. 수녀원 건설과 마찬가지로 이 일을 맡아준 테레사 수녀에게 감사한다.

(이상 '드망즈 주교 일기' 일부 정리)

최미화기자

글·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사진·정우용 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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