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산 추곡의 흉작을 계기로 정부는 식량부족을 완화하기 위하여 1963년 1월, 전국 절미운동 요강을 제정·발표하고 적극적인 절미운동을 전개하였다. 초기 단계에는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하였는데 각 시·도와 시·군에 식생활개선위원회를 두고 각 관공서, 학교, 공공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강력한 추진체제가 출범했다. 그 운동 주요 내용은 양곡상은 쌀 8할 이하, 잡곡 2할 이상 비율로 판매하고, 음식점 등 접객업소는 잡곡 2할 이상을 혼합시키는 동시에 각 가정에서는 2일 1식의 분식을 장려하였다. 그리고 미곡을 원료로 하는 소주 제조는 1963년 10월 말일까지 일절 금지하며 공공기관의 구내식당에서는 밀가루와 잡곡만을 사용케 하고 엿, 떡 등도 모두 잡곡만을 원료로 하도록 하였다.
이때 나는 '서울살림'을 하면서 내무부 지방국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를 회고하면 보리밥, 국수가 일상적 식탁메뉴였다. 간혹 있었던, 일과 후 동료들간의 술자리에서도 보리쌀로 빚은 막걸리가 일상화되었다.
1967년 이후 세계 식량사정은 풍작의 연속이었으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빈번한 기상이변으로 흉작을 거듭하였다. 결국 1972∼1973년에는 세계적인 식량파동으로 국제곡물가격의 폭등현상을 가져왔다. 설상가상으로 1973년 10월부터는 석유파동이 발생하여 자원 내셔널리즘의 대두와 함께 식량안보의식이 고조되기도 했다.
정부는 식량증산시책의 적극적인 추진과 더불어 쌀을 비롯한 식량의 소비 억제 시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1970년대 상반기의 강력한 쌀 소비억제시책은 쌀의 평면적 자급이 달성된 1976년 이후에도 계속 되다가 1977년 10월 15일부터 완화되었다.
당시 혼분식 장려운동이 조직적으로 진행된 곳은 학교를 예로 들 수 있다. 일선학교에서의 '도시락검사'는 교육청의 공문지시로 이루어졌는데 구체적으로 몇 퍼센트 이상 혼식을, 몇 가지 이상 잡곡을 섞어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혼분식 장려의 물결에 즈음하여 1960년대 중반부터 꽁당보리밥을 주제로 한 노래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꼬꼬대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앉아 꽁당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좋은 꽁당 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 1985년 쌍용그룹이 스승의 날을 맞아 낸 기업 이미지 광고의 헤드라인이다.
"집이 가난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제자에게 속이 불편하다며 도시락을 넘겨주고 자신은 수돗물로 빈속을 채운 스승의 사랑을 표현한 광고문이었습니다." 당시 쌍용그룹 홍보부장이었던 趙泓來(조홍래·68) 씨의 설명이다. 이 광고는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켜 두 가지 점에서 감동을 주었다. 첫째는 스승의 존엄과 사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희석되는 시기에 참 스승의 사랑을 상기시켜 수많은 스승과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번째는 반만년 보릿고개에 얽힌 인고의 세월을 각성시켰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 웰빙을 구가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오늘의 젊은 세대는 지금의 풍요를 가져온 보릿고개 시대 설움을 한번이라도 되새겼으면 한다.
전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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