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부도심 시대'] (중)부도심 한계와 난개발

2020년 대구 도시기본계획안은 안심, 달서, 칠곡, 성서 4대 부도심을 큰 틀로 하고 있다.

해당 구청의 집계 결과 4대 부도심에는 모두 60만 명이 살고 있고, 지금도 팽창을 계속해 2010년을 전후해서는 5만 가구 이상의 아파트가 새로 들어선다. 그러나 상권과 함께 업무, 교통 기능 분산이라는 부도심 본래의 기능에 비춰볼 때 대구 부도심들은 하나같이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 상권 일변도 팽창 속에 부도심별 특징을 잘 살린 업무 시설들을 전혀 유치하지 못하고 있고, 부도심과 도심 배후의 핵심 중·소단위 지역들은 '주상복합아파트'라는 신종 난개발에 짓눌리고 있는 실정이다.

◇부도심의 그늘

지난 2003년 도시기본계획의 상위개념인 대구권 광역도시계획안이 확정됐다. 이 안에 따라 ▷안심 부도심은 유통, 상업 업무와 주거 기능, 대구 동부권의 농수산물 및 화물유통 거점 복합업무단지 ▷달서 부도심은 첨단산업 및 유통·휴양·위락, 주거 기능에 초점을 맞춘 과학산업단지 ▷칠곡 부도심은 유통, 상업 업무, 주거 기능과 농수산물 및 화물유통 거점, 친환경적 주거단지화로 계획됐다. 당시는 현풍이 포함됐으나 현풍은 신도시 개념으로 빠지고 성서 부도심이 새로 포함됐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부도심별 개발 계획은 단 하나도 구체화되지 못했다. 오로지 무계획적인 상권 팽창만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6일 밤 칠곡 부도심 내 북구 동천동 9만여 평 상업지구의 한 건물에선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취객들이 동시에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곳 뿐만이 아니라 칠곡 부도심 상업지구 곳곳엔 학원과 술집, 노래방이 한 건물에 들어차 있다. 이는 택지개발지구의 경우 업종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학부모 박기동(45·북구 동천동) 씨는 "상가들이 너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며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주변 환경으로 인해 받을 악영향도 문제지만 전체 부도심 발전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구청 관계자는 "상업지구 내 상업 관련 시설은 어떤 용도든 허가에 제한이 없다."며 "교육연구복지시설에 해당하지 않는 사설학원들과 유흥주점들이 얼마든지 한 건물에 들어설 수 있다."고 했다.

달서구 이곡동 학원가의 경우 건물 모퉁이를 돌자마자 아예 유흥업소 밀집가가 나타났다. 매일 이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한 학생(17)은 "학원이랑 저런 집(유흥주점)이 붙어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와 구청의 도시계획 담당들은 "택지개발지구로 형성된 모든 부도심들이 마찬가지 상황"이라며 "지난 2000년 불허, 지정, 권장 용도를 따로 정할 수 있는 도시계획법상 지구단위계획이 만들어졌지만 1980, 90년대 택지개발지구들은 지구단위계획을 적용받지 않아 모든 업종이 마구 뒤섞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계 상황을 맞은 부도심

더 큰 문제는 이미 상가 시설들이 모든 건물에 빼곡히 들어차 업무 시설들을 입주시킬 공간이 전혀 남지 않았다는 것. 택지개발지구라 하더라도 10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지구단위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이미 개발 가능한 모든 땅에 상업 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대구시가 대구권 광역기본계획을 아무리 따르려고 해도 더 이상 가용 부지를 찾기 어렵다.

실제로 부도심 규모와 발전 가능성을 대구시보다 먼저 간파한 건 민간 대형소매점들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대구 부도심들엔 부도심으로 자리 잡기도 전에 대형소매점들이 줄줄이 들어앉아 교통 체증과 지역 상권 몰락이라는 공통 문제를 낳았다. 4대 부도심만 하더라도 성서와 달서 부도심에 3개, 안심 부도심에 3개, 칠곡 부도심에 1개의 할인점이 몰려 있다.

이에 대해 한 도시전문가는 "지난 1997년부터 2016년 대구 도시기본계획을 통해 부도심 틀을 처음 잡았던 대구시가 10년이 지나도록 택지개발 방식의 일률적 개발 행위를 그냥 놔 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선진국이나 서울만 하더라도 일찌감치 업종 제한이나 용도 변경 같은 도시계획을 수립해 이 같은 소비지향 부도심 개발을 막아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신종 난개발까지

택지개발과 상권 위주 개발이라는 한계 상황을 맞고 있는 대구 부도심들은 최근 '주상복합 아파트'라는 신종 난개발에 시달리고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경우 주거 공간이 상업 공간을 압도하는데다 상업마저도 업무보다는 판매시설이 훨씬 많은 때문. 주상복합아파트는 대구도시계획조례상 최소 상업 비중이 10%에 지나지 않아 아파트 사업자들은 하나같이 법이 정하는 최대 90%까지 주거공간으로 채우고 있다. 또 업무, 근린생활, 판매, 운동, 문화 등을 포괄하는 10% 상업 시설 중에서도 유독 판매시설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죽전네거리~본리공원삼거리까지 2km구간의 달서 부도심에 들어설 주상복합아파트는 모두 7곳으로, 2천537가구에 연면적 18만9천218평에 이르지만 이 중 상업용 면적은 고작 1만8천497평이다. 게다가 이 상가 면적 중에서 업무용은 40%에도 못 미치는 7천158평(38.7%)이다.

2020년 대구도시기본계획을 보면 동대구 신도심과 인접한 범어네거리권 역시 '주상복합아파트' 천국. 국제 비즈니스 업무, 광역교통중심을 표방하는 동대구 신도심을 지원해야 할 범어네거리가 주거 중심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수성구청에 따르면 범어네거리권에서 짓고 있거나 건축 예정인 20층 이상 건물은 모두 10동. 이 가운데 주상복합 아파트가 공사 중인 곳 5동, 허가 예정 3동 등 모두 8곳에 이른다. 그러나 연면적 42만7천629평 중 주거 비중이 86%나 되고 상업면적 14% 중에서도 업무 시설 비중은 상업면적의 고작 19.5% 선이다.

더욱이 판매시설이 많이 입주해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중에는 대형소매점 입점을 한창 논의하고 있는 곳도 있다. 광역교통중심을 표방하는 동대구 신도심에 할인점이 들어서면 이로 인한 교통 체증과 골목 상권 몰락이 불을 보듯 뻔한 현실이다.

이에 대해 시 및 구청 도시계획 담당들은 "주거와 판매시설 비중이 큰 건 사실이지만 '구청' 크기 만한 업무시설도 들어서고 운동, 문화전시장 같은 다른 시설들도 함께 입점한다."며 "이 때문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무조건 난개발로 몰아붙이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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