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죄(謝罪)의 해'

告白(고백)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남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랑 고백, 죄를 참회하고 신에게 信從(신종)을 약속하는 신앙 고백은 삶을 뒤흔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백들은 아무 때나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 이른바 '큐피드의 화살'이 심장에 와서 꽂혀야 사랑 고백이 이뤄질 수 있다. 신앙 고백은 더 어려울 게다. 인생관과 세계관의 격동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백 가운데 그보다도 더 어려운 건 과거의 역사적 過誤(과오)에 대해 그 잘못을 비는 경우이며, 유명인사들의 謝罪(사죄) 역시 그에 못잖지 않을까.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몇 달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경호대였던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한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사회적 지위와 학식'덕망이 높을수록 과거의 잘못을 털어놓기 두려울 건 뻔한 일이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어느 때보다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두드러진 한 해였다. AP통신은 최근 "올해는 '사죄의 해(Year of Apologies)'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그 유형이 '둘러대기형' '동정유발형' '책임전가형' 등 다양하지만 저명한 정치인'연예인, 심지어 종교인까지 懺悔(참회)의 몸짓으로 고개를 숙인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 통신은 군인을 卑下(비하)했다가 사과한 존 케리 미 상원의원과 음주운전 체포 뒤 유대인 비하 발언을 한 뒤 잘못을 빈 영화배우 멜 깁슨은 '둘러대기형'이라 했다. 마약 복용 등을 시인한 테드 해거드 목사와 불법 로비자금 착복 뒤 사과한 밥 네이 전 미 하원의원은 '동정유발형', 미성년자 성추문의 마크 폴리 미 하원의원과 약물 복용 뒤 교통사고를 낸 패트릭 케네디 미 하원의원은 '책임전가형'으로 분류했다.

○…분명 '사과도 사과 나름'이다. 남발되면 그 眞正性(진정성)에 회의를 갖게 하기도 한다. 참회만 하면 용서받는다는 생각도 문제다. '실수→사과→교정'이 일종의 비즈니스처럼 여겨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사과나 참회가 결코 전부일 수 없는 탓이다. 우리 사회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내 탓' 실종 현상 때문이다. 정치권 등 고위 지도급 인사들이 자기 잘못의 인정은커녕 '남 탓'만 하고 있지 않은가.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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