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쌍춘년(雙春年)에…

雙春年(쌍춘년)이라 해서 결혼식 러시를 이루고 있다. 立春(입춘)이 음력으로 한 해 두 번 들었다 해서 쌍춘년이라 불리는 이 해에 결혼하면 복을 받는다는 속설이 퍼졌기 때문이다. 200년 만에 한 번 온다고 알려져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헛소문이다. 지난 2004년, 2001년도, 오는 2009, 2012, 2014년도 쌍춘년이다. 2, 3년 단위로 어김없이 돌아온다.

어쨌거나 상혼 어린 입소문과 좋은 게 좋다는 심리가 만연해서 감소 추세이던 예식장 결혼 건수가 4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고, 가을 지나 연말로 접어들면서 결혼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덕분에 예식장과 혼수'신혼여행 등 관련업계는 즐거운 비명을 올린다고 한다.

허덕이는 쪽은 축의금 봉투 들고 쫓아다녀야 하는 애매한 하객들이다. 많은 날엔 가족까지 동원해야 한다. 축의금 부담과 주말 손실이 일상의 부채처럼 뿌리 내린 지 오래지만, 부조금 조달을 위해 아파트 경비를 한다는 퇴직자는 올해 같은 해는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허례허식 줄이고 한 푼이라도 아껴서 잘살아보자던 1970년대, 강력한 처벌을 동반한 '가정儀禮(의례) 준칙'을 시행했던 게 선견지명으로 보여진다.

1999년 민주화와 규제개혁 바람을 타고 가정의례 준칙이 '건전 가정의례 준칙'으로 대체된 이후, 혼사의 허례허식과 고질적인 허영과 과시욕은 본격적으로 되살아났다. 덩달아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들의 生活苦(생활고)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요즘 결혼식 모습은 두레와 품앗이 등 상부상조의 전통 풍습과는 많이 다르다. 이웃의 일을 자기 일처럼 거들어주는 소박한 인정 나누기와 받은 만큼이라도 굳이 갚고자 하는 보은의 마음씀씀이는 사회의 윤활유와 같은 미덕이지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고받기 룰이 주도하는 건조한 거래 관행과 다름없어 보인다. 눈도장 찍기와 보험금 납부, 축의를 가장한 뇌물 상납의 장으로 곧잘 변질된다. 국가적 차원의 경제'사회적 비용도 엄청날 것이다.

개선이 시급한 사회적 현안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걸려있어서 누구도 개탄은 하되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더 수렁에 빠지기 전에 공론화하고 정책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남 시늉 내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야 본인의 사정으로 치부하더라도, 갈수록 노골화하고 심화되고 있는 경쟁적 하객 동원 풍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민주화시대에 법으로 다스리자고 나설 용기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다. 있는 사람,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돈 많으니 돈 더 챙기려 말고, 줬더라도 본전 찾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권세 있는 줄 다 알고 있으니 굳이 과시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있는 사람이 손해 본다 치고 先導(선도)할 경우 현재의 결혼 풍속도는 급속히 개선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결혼식을 젊은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부모들은 이른바 婚主(혼주)의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이 좋다. 열 몇 살 먹은 철없는 아이를 결혼시키던 옛날엔 혼주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다 커서 돈 벌고 세상 물정 다 알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를 보호하고 대신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식장 앞에 버텨선 전근대적인 혼주 행태가 하객 동원을 촉발하고 사돈 기죽이기 경쟁까지 초래한다.

하객은 신랑'신부의 친구, 학교'사회생활에서 만난 가까운 선후배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온당하다. 부모 쪽은 자식들도 잘 아는 오랜 친구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친척을 포함해서 한눈에 모두 알아볼 수 있는 그다지 많지 않은 하객들이 아늑한 장소에 모여 젊은 한 쌍을 한 가족처럼 축하하는 그런 결혼식이 좋지 않을까. 다행스럽게 이런 결혼식이 늘어나는 추세다.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결혼식에 동의함으로써 결혼식이 즐겁고 아름다운 잔치마당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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