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물어오셨다,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장 하는 그 단체가 도대체 뭐냐?" 작지만 행정권력을 행사하는 '정부'인데 왜 '단체'라는 단어를 쓰느냐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평소 이 '단체'라는 말을 곱잖게 봐온 터라 알아보았다.
연혁이 만만찮다. 지방자치단체라는 말을 사용한 최초의 기록은 1948년 제헌헌법으로까지 올라간다. 제96조,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 그 자치에 관한 행정사무와 국가가 위임한 행정사무를 처리하며…." 58년 전 처음 사용했던 것이다.
제헌헌법은 이 말을 어디서 보고 쓴 것일까? 우리 지방자치 역사도 따진다면 고려시대까지로는 쉽게 올라간다. 사심관제도가 그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유향소-향청이라거나 향약제도 하는 것에서 체계·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지방자치의 정신과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제헌헌법 때까지는 우리 역사에서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를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국립대에서 지방자치를 가르치는 교수님과 법제처에서 법령해석 업무를 보고 있는 관리는 이 말이 '아마도' 일본에서 유래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본은 1947년 제정한 지방자치법에서 '지방공공단체'를 뒀다. 우리나라 제헌헌법의 지방자치 규정과 1949년 제정된 지방자치법은 일본을 본뜬 것이므로 명칭도 일본 것을 참고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도입한 지방자치의 개념이나 방식을 볼 때 지방자치단체라는 말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방자치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한 기구를 통해 행정수요를 자기 책임하에 충족하는 주민자치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조직하면 이 지방정부가 일정 범위 내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단체자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 프랑스, 일본이 도입한 단체자치를 모델로 했으며, 중앙정부가 조직한 지방정부를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제 지방자치단체라는 말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러나 앙금은 여전히 남는다.
단체라…. 사전에는 단체(團體)를 이렇게 풀이한다, '같은 목적으로 모인 두 사람 이상의 모임'. 우리는 단체라는 말을 바로 이렇게 생각하므로 단체 하면 좋게는 자선단체, 예술단체,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이, 나쁘게는 범죄단체, 조직폭력단체 등이 생각나는 것이리라.
어쨌든 우리가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 시작한 것은 58년 연혁에도 불구하고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지방자치를 전면 실시한 것은 1960년 4·19 이후 잠시 동안과 1995년 6월 27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동시선거부터이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와 단체장, 또 기초지자체와 기초단체장, 광역지자체와 광역단체장이라는 말이 우리 옆에 익숙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정작 단체, 단체장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이나 언론에서는 쓰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 예컨대 학술상 가끔 쓰는 정도라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를 말할 때는 도도부현(都道府縣), 시정촌(市町村)을 쓰고 지방자치단체장을 말할 때는 도도부현 지사(知事), 시정촌 장(長)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법도 지방자치법과 몇몇 법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보다는 시·도, 시·군·구라는 말을, 지방자치단체장보다는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이라는 단어를 쓰고는 있다.
하지만 언중(言衆)과 언론에는 단체, 단체장이 훨씬 더 유행이다. 이런 지경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농민'단체', 노동'단체' 등이 참가하는 반FTA 시위를 막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시위를 하려는 이 단체, 저 단체와 이를 막으려는 그 단체들이 뒤섞여 약간 우스꽝스럽지 않는가?
확실히 단체, 단체장이란 말은 자치정신이 확 살아나는 용어는 아닌 것 같다. 지방자치도 4기, 10년을 넘어가고 있다.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지방정부 또는 시·도,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시·군·구, 광역단체장은 시·도지사, 기초단체장은 시장·군수·구청장이라는 말을 일상용어화하는 것을 제안해본다. 어쨌거나 마뜩찮은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이란 말만은 버리는 게 어떨까?
이상훈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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