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한국시간) 2006 도하아시안게임 싱크로 듀엣 종목이 열리던 카타르 도하 하마드 아쿠아틱센터.
북과 꽹과리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영화 '왕의 남자'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오자 김민정(25), 조명경(21.이상 경기수영연맹) 한국 싱크로나이즈드 듀엣은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는 표정을 짓다 사뿐히 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물 속에서 다리만 내 놓은 채 북과 장구, 꽹과리를 치는 것처럼 힘차게 물을 첨벙이다가도 애잔한 음악이 흐를 때는 고전 무용을 보듯 흐느적거렸다.
경기를 마친 김민정, 조명경은 물 밖으로 빠져나와 꼿꼿이 선 자세로 전광판의 점수를 기다렸다. 기술 및 자유 종목 합계 89.334점. 바로 앞서 연기를 한 카자흐스탄(89.668점)보다 0.334점이 낮은 것이었다.
중국, 일본에 이어 동메달을 노리던 한국으로선 내심 걸었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한국 싱크로는 이번 대회에서 더도 말고 동메달을 목표로 했다. 동메달을 발판으로 한국 싱크로의 재도약을 이루고 싶은 욕심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 1, 2위를 다투던 한국 싱크로는 지난해 선수 선발에 불만을 품은 일부 대표 이탈과 학부모와 수영연맹과의 힘 겨루기, 파벌 싸움이 벌어지며 급격히 추락했으며 등록 선수들도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이번 대회를 겨냥해 지난 5월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대표 선발전도 파행 속에 치러졌다. 선수 부족으로 2명이 나가는 듀엣만 출전키로 결정한 상태에서 조명경-홍연진(이화여대)은 짝을 이뤄 나왔지만 김민정은 혼자 출전한 것.
수영연맹은 결국 관록이 있는 김민정과 조명경을 듀엣 대표로 뽑았지만 태릉에 들어가지 못하고 잠실실내수영장에서 따로 훈련을 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9월 일본에서 열린 싱크로 월드컵 듀엣에서 11위를 차지한 것.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이어 3위였기 때문에 메달 가능성이 높아졌고 10월부터 태릉에 입촌했다.
한국 싱크로는 북한을 동메달 전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생각했다.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북한 싱크로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날이 갈수록 상승세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북한은 넘었지만 복병은 카자흐스탄이었다.
김민정-조명경은 경기를 마친 뒤 "카자흐스탄은 월드컵 때 우리보다 한 계단 낮은 12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는데..."라며 "짧은 시기에 호흡을 맞춰 최선을 다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최수미 코치도 "이번에 꼭 동메달을 따 싱크로를 정상화하는데 발판으로 삼고 싶었는데 안타깝다"며 "그래도 열악한 환경을 꾹 참고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와 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최 코치는 그토록 바랐던 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고생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는지 선수들을 끌어안고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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