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축구, 잡음이 빚어낸 '재앙'

13년 전 기적을 이뤄낸 도하에서 당한 '재앙'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연적인 재해나 우연이 만들어낸 사고는 아닌 듯 하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불협화음이 빚어낸 '인재(人災)'에 가깝다.

12일(이하 한국시간) 한국축구가 도하아시안게임 결승 문턱에서 좌초한 것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안주하고 있던 종이 호랑이가 '집안 단속'을 잘못했을때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와 같았다.

핌 베어벡 감독과 한국축구대표팀은 월드컵, 아시안컵축구 등 다른 국제대회와 달리 선수촌에 입촌해 '집단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잡음이 불거졌다.

조별리그에서 약체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을 상대로 만족스럽지 못한 승리를 거둔 뒤 베어벡호의 주장 이천수(울산)는 웃지못할 해프닝에 휘말렸다.

이천수가 사격대표팀에 있는 열 살 이상 선배 대표선수에게 반말을 하면서 불손한 태도를 보여 티격태격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일부 언론에도 보도된 이 사건은 당사자들과 양측 코칭스태프가 사건 자체를 부인하면서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8강 진출 여부가 걸린 지난 6일 바레인전을 앞두고 불거진 해프닝은 선수단 사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축구대표 선수들은 선수촌 식당 등에서 다른 종목 선수들과 마주칠때 제대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과 지내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합심해야 할 프로축구 선수들이 이질적인 환경을 탓하며 마찰음을 냈다는 자체가 '불길한 징조'로 작용했다.

베어벡 감독의 처신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베어벡은 이번 대회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지 않았다.

20명의 선수와 홍명보 코치, 물리치료사가 선수촌에서 생활하고 베어벡과 압신 고트비 코치는 도하 시내 특급호텔에 기거했다.

매일 훈련장에서 만나 상황을 점검했다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로는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가 병사들을 버려둔 채 '나홀로' 생활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베어벡은 또 지난 달 29일 대한민국 선수단의 입촌식 직전 선수촌 수영장에서 웃통을 벗어던지고 일광욕을 즐기는 장면도 포착됐다.

선수촌 안에서 생활한다면야 잠시 짬을 이용해 수영장을 찾지 못할 이유도 없겠지만 촌외에 거주하면서, 그것도 결의를 다지는 전체 선수단 입촌식 직전에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게 그리 바람직하진 못했다.

게다가 이 광경을 촬영하는 국내 사진 취재진 카메라를 향해 발길질을 해대는 상식밖의 행동도 있었다.

대한축구협회의 변명도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축구협회는 "베어벡 감독이 외국인이라 집단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물리치료사가 선수들과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육상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일궈낸 핀란드 출신의 에사 우트리아이넨 코치를 비롯해 대다수 아마추어 종목의 외국인 코치들은 '군말없이' 선수촌에서 땀방울을 흘렸다.

축구대표팀은 언제나 해외 원정길엔 특급호텔을 고집해왔다. 잠자리가 편해야 전력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종합대회인 아시안게임에서 나타난 축구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행태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성적보다 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남게 됐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