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의 꽃은 겨울산행이 아닐까.
만발한 눈꽃과 쌓인 눈을 헤치며 전진하는 도전정신과 성취감, 그리고 정상에서 맛볼 수 있는 아찔한 전율…. 어느 계절보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산의 묘미다.
겨울이 깊어가는 12월,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을 찾아 나섰다. 소백산은 지금 온통 은세계다. 컬러가 사라져버린 흑백 세상. 눈 내리는 날 산을 찾는다면 하늘마저 잿빛이다. 등산객의 원색 등산복이 없다면 색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오지 않았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겨울에 가장 알맞고 짧은 등산로는 영주 풍기읍 삼가리에 위치한 삼가매표소~비로봉 코스. 매표소 뒤쪽 주차장에서 약 400m 정도 비로사 쪽으로 올라가면 삼가야영장과 매점이 나온다. 비로사를 지나 오른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등산화를 바짝 조여맨 뒤 약 15분 정도 오르면 달밭골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비로봉으로 향하게 된다. 민박집 간판이 보이는 민가가 띄엄띄엄 나오다가 끝나는 지점에서 잣나무 숲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인간의 흔적은 사라진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산짐승들의 발자국만 보인다.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소리만이 깊은 산속의 정적을 깨뜨린다.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면서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호흡은 가빠진다. 잣나무 숲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약간 넓은 공간이 나오고 비로소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는 잘 짜여진 석축을 볼 수 있는데 이 석축 위쪽에는 고려시대 사고(史庫)로 추정되는 터와 샘터의 흔적이 있다.
이어서 해발 1,000m라고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 또다시 휴식. 등산로 주위에는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꽃을 피운 채 이방인을 반겨준다.
어느 순간 소나무의 개체수가 적어지고 소백산의 대표주자인 앙상한 철쭉나무 군락이 눈 속에서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비로봉 아래에 거의 다다르면 조그만 샘터가 나온다. 여기에서 목을 축이고 마지막 난코스를 준비했다. 돌계단이 수없이 나오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면 '고 조광래 묘'에 이르게 된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봐도 희뿌연 하늘 때문에 비로봉 정상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200여 개의 나무계단을 힘겹게 오른 뒤 드디어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에 도착했다.
3시간 동안의 산행 끝에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에게 비로봉은 탁 트인 풍광을 선물하는 듯하더니 이내 운무에 휩싸인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다. 세찬 바람은 언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머리카락과 모자의 털에는 어느새 고드름이 맺혔다. 찬바람은 두터운 옷 속을 연신 파고들지만 오히려 신선하고 상쾌하다.
체온 또한 급격하게 내려가는 듯하다. 내친 김에 비로봉에서 연화봉 쪽으로 내려선다. 천연기념물 제244호인 주목군락지와 이 주목군락지를 관리·감시하기 위해 만든 감시초소를 만날 수 있다.
주목은 곧바르게 성장하는 수목이지만 고지의 강풍으로 대부분 휘어져 기묘한 형상이다. 감시초소는 단양군청에서 주목군락지의 관리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 등산객들이 쉼터로도 이용할 수 있다.
감시초소에서 언몸을 잠시 녹인 뒤 다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세찬 바람이 빨리 내려가라는 듯 이방인의 등을 힘차게 밀어준다.
◇ 소백산의 사계
백두대간이 관통하고 있는 소백산국립공원의 등산로는 백두대간 종주코스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해발1,439m)과 연화봉(1,383m), 국망봉(1,420m)을 중심으로 영주 풍기와 충북 단양쪽에서 올라갈 수 있다.
등산객들은 비로사~비로봉과 천동~비로봉 등의 비로봉 구간과 희방~연화봉(천문대)과 죽령~연화봉 등 연화봉 구간을 주로 많이 찾는다. 초암~국망봉 구간은 등산로의 길이가 길고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아직까지 탐방객이 많이 찾는 편은 아니다.
소백산 등산로는 산세가 험하지 않고 무난해 연중 탐방객이 쉽게 찾아오지만, 겨울철에는 비로봉을 비롯한 정상부에는 세찬 바람이 불어 각종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안전사고에 대비한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수.
또 등산로는 없지만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국보와 보물,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부석사는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아름다운 사찰이다.
소백산국립공원의 사계절 탐방코스로는 연화봉~비로봉~국망봉코스의 철쭉, 여름에는 배점~국망봉코스의 계곡과 야생화, 가을에는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길과 단풍, 겨울에는 비로봉 주변의 설경이 장관을 연출한다.
가족과 함께 찾는다면 삼가매표소~비로봉, 천동매표소~비로봉 등 비로봉으로 오르는 구간이 적당하며, 희방매표소에서 희방폭포를 거쳐 희방사에 이르는 코스와 부석사를 둘러보는 코스도 좋다.
▶가는 길
동대구역에서 영주역까지 오전 5시 40분부터 오후 7시 55분까지 하루 6회 열차가 운행된다. 대구북부터미널(053-357-1851~2)에서는 영주까지 오전 5시 55분부터 오후 9시 2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시외버스가 운행된다. 영주시에서 출발, 삼가동까지 오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삼가동 구판장 앞에서 버스가 회차를 한다. 이곳이 버스 종점.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삼가매표소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북고속도로 금호JC에서 중앙고속국도를 탄 뒤 풍기IC에서 내려 동양대→비로사 방면으로 향하면 삼가매표소에 도착할 수 있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
삼가야영장에 있는 매점이 마지막 매점이므로 필요한 물품은 이곳에서 구입하면 된다. 삼가매표소 위쪽으로 달밭골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등산객이 많이 몰리지 않는 평일의 경우 달밭골 입구까지 약 2㎞를 차량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등산에 도움이 된다. 소백산사무소=054)638-6196. 소백산북부사무소=043)423-0708.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