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골수이형성 증후군' 앓는 필리핀人 로드실씨

고국에선 대학졸업·사회복지사도 가난 못벗어

스산한 기운에 눈을 뜬다. 침대가 빽빽하게 들어찬 좁고 갑갑한 입원병동의 새벽, 하얗게 서리가 낀 창너머로 차가운 바람 소리가 들린다. 필리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추운 겨울이 다. 1년이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지 벌써 석달 째, 하루를 10년처럼 살고 싶었지만 하늘이 결코 허락치 않을 것 같다.

병원에선 '골수이형성 증후군'이라고 했다. 지난 1년 간 달서구의 한 염색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했던 그 끝이 난치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그동안 견뎌온 모든 아픔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다리 통증과 떨어져 나갈 것 같던 어깨를 결코 약으로 고칠 수 없다는 현실이 힘겹기만 하다.

필리핀의 가난한 섬 '폴릴로'에서 나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아프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프면 어머니와 세 명의 동생, 여섯 명의 조카들이 굶어야 한다. 3년 전 고기잡이를 했던 아버지마저 심장병으로 세상을 등진 뒤, 가족에겐 내가 마지막 희망이자 삶의 이유였다.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며 120만 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용돈 10만 원을 뺀 나머지 모두를 가족에게 보냈다. 가난에 찌들려, 빈곤이 지긋지긋해 가족을 팽개치고 대학까지 졸업했다. 필리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것도 가난한 그들의 삶이 다시 가난으로 대물림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으로 날아든 것은 나 하나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들었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지만 모든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컸던게 사실이다.

'골수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조혈모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혈액이 제기능을 못한다고 했다.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날 도와주던 임종필 신부님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골수검사를 의뢰했고 골수희망자를 찾아나섰다. 마침 신부님은 지난달 한국에서 유일하게 골수가 맞는 기증자를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나의 '희망'이었던 그는 일주일 후 골수기증을 거부했다.

황금 불빛으로 물든 시내의 밤거리를 거닐고 싶다. 바라보기만 할 뿐, 느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한국의 모든 것을 가슴에 품어본다. 차가운 주검으로 한국 땅에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발로, 내 피부로 한국을 느끼고 싶었는데···. 가슴 한 끝이 아려온다. 결국 '하루살이' 병자란 것을 알기에 조용히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되뇌여본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지난 9일 오후 2시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만난 로드실(34·필리핀 폴릴로섬)은 임종필 신부와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임 신부는 그를 위해 제대혈 수술비를 모으는 중이었다. "마지막 희망인데 수술비 5천만 원이 좀체 모아지지가 않네요."

머쓱한 표정으로 취재진에게 말을 건네는 임 신부님는 "한국땅에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했다.

"희망, 희망은 있는거죠?" 어눌한 말투로 로드실은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에게 받은 사랑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일 그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차마 마주하기 힘들었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