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 9회에서 언급한 암곡리 사람들과 경험담을 나누다 끝판에 분위기가 무르익자 하소연, 회고담이 봇물같이 터져 나오며 가난의 한풀이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 속에는 오늘의 안온함에 대한 안도감과 옛날에 대한 애틋한 정과 恨(한)이 교감되었다.
가난하고 궁색한 살림에 시달린 고달팠던 옛이야기는 歸路(귀로) 중에도 이어졌다. 함께 동행한 향우 임운식씨가 탄식하며 '옛날 흉년을 넘긴 遺恨(유한)'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애들이 허기진 배를 껴안고 밥 달라, 울며 보챌 때 어머니 심정이야 오죽이나 했겠습니까... 우선 배를 채워주어야 했던 어머니가 쌀독에서 마지막 남은 쌀 한줌을 긁어내 흰죽을 쑤어 주었는데 물처럼 멀건 죽을 받은 아이는 숟가락질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죽그릇을 내려다보기만 하더랍니다. 그러다가 거기에 자기 얼굴이 어른거리며 비치자 누군가 죽을 훔쳐 먹는 것으로 착각하고 숟가락으로 그릇을 꽝 내리치니 죽이 다 쏟아져 방에 깔린 삿자리 사이로 온통 스며들고 말았다 하더이다."
그는 또 "당시 어머니들의 苦惱(고뇌)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냐"며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헛거미가 잡힌다'―눈에 허깨비가 아른거릴 정도로 배가 몹시 고프다는 뜻―는 우리의 익은 말이 있듯이 나 역시 그러한 이야기들이 한갓 지난날의 寓話(우화)로만 느껴지지 않아 마음에 새겨두었다.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니 '동대봉산' 봉우리 높은 하늘에 뭉게뭉게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野鶴(야학)들이 노니는 아무런 속박 없는 한가로운 생활의 경지로 생각이 스치더니 그것도 잠깐일 뿐, '밥 달라며 우는 아이' 모습의 幻影(환영)이 아른거리는 것 같더니 '멀건 粥(죽)'이나마 마련하려는 어머니의 抱恨(포한)을 되새김하는 상념으로 뒤바뀌어 졌다. 문득 忘却(망각) 속에 파묻힌 어느 詩句(시구)가 불현듯 떠오르면서 보릿고개의 실재감과 마주쳤다.
김삿갓(金炳淵 1807-1863)이 보릿고개 철에 밥을 얻어 먹으려 어느 집에 들렀다가 멀건 죽 한 그릇을 내놓으며 미안해하는 주인을 보고 읊은 한수의 詩(시)다.
"粥一器" 죽 한 그릇
四脚松盤粥一器 네 다리 소나무 소반에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떠돈다.
主人莫道無顔色 주인이여 무안해하지 말지니
吾愛靑山倒水來 나는 물에 비친 청산을 좋아한다오.
豁達
이제 암곡마을은 많이 달라졌다. 1971년 7월 16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新羅古都(신라고도)는 雄大(웅대), 燦爛(찬란), 精巧(정교), 闊達(활달), 進取(진취), 餘裕(여유), 優雅(우아), 幽玄(유현)의 感(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재개발'하라는 친필지시(사진)와, 같은 해 7월 17일 다시 친필 '세부지침'을 비롯한 업무집행부서 조직(안)까지 하달함으로써 그 해 11월 역사적인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건설부 案(안)이 완성되었다. 그 일환으로 암곡마을 바로 인근에 '보문관광단지'가 개발되는 동시에 도로망의 정비, 확장에 따라 어느 지역 못지않은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넘어온 보릿고개의 여정을 어찌 잊으랴. 그것은 자조 노력으로 굶주림을 극복하려는 인내와 가난의 한을 풀겠다는 의지력이 아니던가. 우리 민족 저력의 湧出(용출)이 아니던가.
김수학 전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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