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애상의 계절이다. 삭풍에 떠는 앙상한 나뭇가지는 사람들을 슬픔에 잠기게 한다. 인생의 겨울을 맞은 노인들에겐 자기 연민이 깊어지면서 외로움과 죽음이 한층 가까운 친구로 다가온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 being)이 유행하더니 인생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 dying)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웰다잉,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다는 것일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사람들이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듯이 대부분 죽음에 대한 준비에 소홀하다. 웰다잉의 지혜를 얻으려면 종교에 귀의하거나 자기 성찰을 통해 찾을 수도 있다. 성경은 1천300회 이상 죽음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우리사회도 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웰다잉이 시대적 화두가 될 전망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죽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0살을 넘긴 뒤 穀氣(곡기)를 끊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스콧 니어링이나 高僧大德(고승대덕)들에 버금가는 죽음을 맞기란 쉽지 않다. 니어링처럼 현명함과 지혜를 가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준비가 없으면 실현이 어렵다. 웰다잉은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미 산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장년층에게도 웰다잉은 중요하다. 죽음은 나이순이 아니지 않은가.
예고된 미래인 죽음을 대비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삶이다. 많은 사람들은 은퇴 이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금이 10억 원, 20억 원이라는 얘기는 솔깃하게 듣는다. 이와 더불어 함께 늙어가며 놀 수 있는 벗을 미리 사귀어 둘 것을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물질적인 조언과 충고 일색이다. 인생의 마무리를 잘하는 웰다잉을 위한 준비가 물질적인 것뿐일까?
웰다잉을 하려면 많이 나누고 떠나야 한다. 無所有(무소유)의 삶은 아닐지라도 모으고 채우기만 하는 대신 내려놓고 나누는 것이 소중한 삶이 아닐까.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찾지 일이나 재산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재산이나 업적은 곧 사라지거나 잊히는 반면 사람만 남는다. 결국 웰다잉은 가진 것을 나눠서 사람에게 전하고,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나눔의 삶, 봉사는 수명도 연장시킨다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은 일반 암환자의 평균 수명은 19개월인 반면 자원봉사를 하는 암환자의 평균 수명은 37개월에 달했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들의 침 속에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물질이 보통 사람보다 50% 정도 더 많이 들어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봉사활동을 통해 심리적인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면역 기능이 향상된다는 얘기다.
죽음 앞에 오만한 인간은 없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삶은 '많은 순간'이지만 죽음은 '한순간'이다. 사는 방법은 일생을 통해서 배워야만 한다. 사는 것 이상으로 평생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죽는 일이다.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연말에 웰다잉을 언급한 것도 죽음을 생각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보며 올 한 해를 웰엔딩(well ending)하자는 뜻이다.
웰다잉은 기꺼이 죽음을 배우려 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한다. 웰다잉을 모르는 사람은 한 마디로 살았을 때도 사는 법이 나빴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죽음의 의미를 알면 세월을 아끼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여진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고 했다. 웰다잉은 욕심을 비우고 나누는 삶이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인생의 끝에서 만나는 웰다잉의 지혜를 익히는 게 웰엔딩이 아닐까. 이 겨울에 당신이 생각하는 웰엔딩은 무엇인가.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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