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긴 공직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말하라고 한다면 임업시험장(대구수목원 전신)에 근무하던 시절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말하라고 한다면 역시 임업시험장 책임자로 있으면서 추진했던 수목원 조성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 황량한 겨울에도 좋은 볼거리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나를 기쁘게 하는 지난 일 중에서 선인장 온실도 그 하나이다. 특히 황량한 겨울에 수목원을 찾아도 좋은 볼거리가 되는 것이 선인장 온실이다. 이 선인장은 시지에 살던 정주진 씨라는 분이 기증한 것이다. 그 분은 50여 년 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선인장을 재배에 손을 댔다고 한다. 복현동 빈터를 빌려 선인장 농사를 지으며 생산한 선인장을 직접 손수레에 싣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팔았다고 한다. 이익이 생길 때마다 자기 포지(圃地)를 마련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땅값이 쌌던 시지(時至) 일대에 정착했다.
때마침 알로에가 각광을 받으면서 수입이 늘어나 농장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던 차 그 곳이 개발되면서 상당한 보상금을 받게 되고 키우던 200여 종 1000여 포기의 선인장은 갈 곳이 없어졌다. 모 호텔이 거액을 줄 터이니 팔라고 제의를 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집안을 일으키고 자식들을 공부시킨 선인장을 차마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그 분은 처음에 어린이회관에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온실 신축 등 많은 비용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내용이 내게 전달되었고 현장을 확인한 결과 종류가 다양하고 교육적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가로 굳이 따진다면 2억 정도는 되었다. 시장께 그분을 관리인으로 채용하는 조건으로 인수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임업시험장에 통보 이행하도록 지시 했다. 그 후 내가 그 곳 책임자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사무실로 나를 찾아온 그 분은 그 동안 상급자나 동료들로부터 받은 서러움을 울면서 토로했다.
"당신이 선인장을 기증하지 않았으면 하던 일만 하면 되었는데 선인장을 기증하여 일이 하나 더 늘어 그만큼 힘이 든다며 핀잔을 해 몇 번이나 그만두려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로하고 돌려보냈다. 수목원의 청사(廳舍) 짓는 것과 동시에 온실 신축도 서둘렀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힘 드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일했다. 그 분이 기증했다는 내용이 담긴 조그마한 표석을 설치해 주었더니 더 기뻐했으나 내가 수목원을 떠나온 후 몇 년 더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2003년 돌아가셨다.
◇ 난방기 고장…밤새 열풍기 돌려
선인장은 황량한 겨울 수목원의 꽃이다.
현재 문옥희씨가 관리하고 있다. 처음 그 분을 임명할 때 인사 담당자를 불러 발령을 내라고 하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먼저 들어온 사람을 제쳐두고 늦게 들어온 사람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버럭 화를 냈다.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능력과 적성에 따라 사람을 배치하는 것은 책임자의 고유권한이며 기증하신 분이 추천했을 뿐 만 아니라 그 동안 내가 살펴본 바로도 그분만큼 애정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인장 중에서 금호같이 100년 이상 자란 것은 크기도 크려니와 무거우며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모두들 만지기를 싫어한다. 따라서 대다수의 인부들은 선인장 온실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한다. 그러나 문씨만큼은 비록 여자이지만 가시가 있는 큰 선인장 만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일은 선인장 온실 신축이었다. 외국의 그림엽서에 나오는 그런 예쁜 모양으로 짓고자 했으나 막상 공사를 시작하려고 하니 대구에는 실력을 갖춘 업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규정에는 반드시 지역 업체에 도급을 주도록 되어 있어 기술도 없는 관내 업체에 맡기다보니 능력부족으로 지금의 모양으로 밖에 건축할 수밖에 없었다. 온실을 다 짓고 선인장을 옮겨 놓고 맞은 그 해 첫 겨울 아니나 다를까 난방기가 고장나 선인장이 얼어 죽을 것 같아 부랴부랴 식물에는 써서 안 될 건축용 열풍기를 빌려와 밤잠을 설쳐가며 온도를 높였던 일이다.
글·사진 : 이정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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