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스타토크] 배우 신구

한번쯤 꼭 만나보고 싶은 배우가 있었다. 독특한 음성에다 절절한 감정의 대사를 쏟아놓는 배우 신구. 그의 연기 하나하나가 시선과 청각을 꼼작 없이 붙들어 맨다.

신구는 1962년에 연극 '소'로 무대에 첫 발을 디딘 뒤 40년이 넘는 세월을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가 배우 생활 44년 만에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영화 '방울토마토'에서 그는 철거 직전 판자촌에서 폐휴지를 모아 손녀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할아버지로 나온다.

"예전에 신상옥 감독 살아계실 때 치매노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겨울이야기'에서 치매 노인 역으로 주인공을 했는데 극장에서 개봉을 못했어. 그 영화가 상영을 못했으니까 첫 주연은 이번 영화가 되는 셈이지."

그의 최대 장점은 철저하리 만치 배역에 몰두한다는 것. 특히 배우로서 철저히 계산된 집중 상태를 보인다. "배우에게는 끈기와 성실함이 중요하지. 요즘은 옛날보다 더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이 나오는데도 오래 못 버티는 것 같아 아쉽더라구." 그는 후배 연기자들이 반짝 인기에 연연하기 보다 연극을 통해서 성실성과 끈기를 배울 것을 주문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모니터할 것 같은 그는 "내가 출연한 작품에 대해서 모니터를 안 해."라며 운을 똈다. 의아스러워 다시 한번 물었다. "남들은 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봐야 단점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내 연기를 보면 괴로워. 왜 저 정도밖에 못했을까 하고." 그는 연기에 대해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모니터를 통해 단점을 보완하는 게 아니라 항상 단점이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한다는 말이다. 연기생활 40년이 넘은 배우도 늘 연습과 연습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한평생 배우로 살아온 그가 뜬금없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서른아홉살에 장가를 갔잖아. 한창 연극에 미쳐있을 때인데, 그게 돈이 안되잖아. 날 믿고 시집 온 사람에게 미안하더라구. 그래서 TV 드라마와 영화를 시작했지."

인터뷰 중간중간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도 그는 쉴 새 없이 대사를 중얼거리고 수십 번 표정을 바꾼다. 배우 신구는 철저하게 등장인물로 살아간다. 알아보고 다가온 팬들에게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고,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함께 사진을 찍는다.

이번에 출연한 영화 '방울토마토'를 이야기했다. "저예산 영화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 사람냄새 많이 나는 휴먼영화가 더 많이 제작돼야 해. 진한 감동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이거든."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드라마와는 다른 것일까? "특별히 뭐가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 내가 출연한 영화이건 드라마건 모두 잘 됐으면 좋겠어. 배우가 특정 장르를 구분하는 건 우습잖아. 배우 그 자체의 역할이 더 중요하잖아."

이제는 원로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신구, 그의 건강관리 비결이 궁금했다. "요즘 걸어다니면서 건강을 챙겨. 많이 걷고 움직일수록 좋은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차를 안 갖고 다녀." 이야기 도중 그의 녹화 차례가 됐는지 조감독이 찾으러 왔다. 한쪽 손에는 대본을 들고 다시 대사 연습에 몰두한다. 모니터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등장인물 그 자체다. 동대문시장에 어둠이 내려앉고 나서야 촬영이 끝났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오랜 시간동안 배우 신구라는 이름이 너무나 깊고 큰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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