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16일 오전 1시쯤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가 폐질환으로 73년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숨졌다. 김 씨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1991년 8월의 일이다. 김 씨는 1941년 양아버지에 의해 일본군에 넘겨져 만주로 끌려 갔다. 김 씨가 불과 17세 때의 일이다. 석 달 동안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한 동포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 김 씨에게는 고생길이 끝나지 않았다.
중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다가 해방 이듬해에야 귀국했다. 그러나 딸과 아들, 남편을 차례로 잃고 홀몸이 됐다. 그리고 날품팔이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생활이 계속됐다. 누가 알까봐 입도 벙긋 못했지만, 일단 공개하고 나서 김 씨의 행보는 발 빨랐다. 1991년 말 일본정부를 상대로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청구소송 제기, 1992년 일본 법정에서 일본의 만행 증언, 그 뒤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린 수요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해 일본정부의 공식사죄 촉구 등 잊혔던 역사를 되살려내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다.
▲1653년 올리버 크롬웰, 영국 호국경에 취임 ▲1950년 국회, 국민방위군 설치령 가결.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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