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과메기 전쟁

○…시대 따라 계절의 별미도 변해간다. 지난날엔 겨울밤이 이슥하여 배가 촐촐해질 즈음이면 흔히 골목길에서 목청 좋게 뽑아내는 '메미일~묵!'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따끈한 멸치국물에 메밀묵 굵직하게 채썰어 넣고 매콤새콤한 김치 쏭쏭 썰어 얹으면 모두가 꼴깍 침 삼키느라 바빴다. 북녘 사람들의 동치미 냉면처럼 남쪽 사람들에겐 메밀묵 묵채가 겨울 밤참으로 인기였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린 탓일까. 오히려 계절 별미가 사라지는 요즘이다. 이젠 겨울밤이 아무리 깊어도 누군가가 외치는 '메밀묵 사~려!'니 '찹쌀떠~억'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수년 전부터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과메기가 "나야말로 겨울 珍味(진미)"라며 우리의 혀를 한껏 유혹하고 있다.

○…꽁치를 겨울 바닷바람에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며 쫀득쫀득하게 말린 게 과메기다. 바다내음 물씬 나는 생미역에 과메기 한 점 놓고 쪽파 두어 줄기와 마늘 한 조각 얹어 매콤한 초고추장에 찍어먹는다. 처음엔 거무튀튀한 빛깔과 비린내로 역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몇 번 용감하게(?) 먹다 보면 그 독특한 미각에 이끌리게 된다.

○…과메기는 10여 년 전만 해도 구룡포며 포항 등 경북 동해안 지역 주민들만의 한철 별미로 여겨졌다. 그러던 것이 특유한 풍미와 함께 건강식품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대구'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해외 진출도 목전에 두고 있다. 시장 규모도 갈수록 커져 작년 겨울 구룡포에서만도 38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구룡포 포함, 포항지역 전체에서 800억 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과메기가 경쟁력 있는 블루 오션으로 급부상하자 포항과 구룡포 간에 과메기 브랜드 논란이 치열해지고 있다. 포항시가 대외 홍보용으로서 '포항 과메기'로 해야 한다고 하자 포항지역 과메기의 80% 정도를 생산하는 구룡포 쪽은 "과메기 원조는 구룡포"라며 맞서고 있다. 원산지 명문화로 서로가 시장 우위를 점하겠다는 것이어서 싸움이 만만찮아 보인다. '대게 원조'를 둘러싸고 법정싸움까지 벌였던 영덕과 울진의 경우 결국 무승부로 끝나 각각 '영덕대게'''울진대게'로 쓰고 있다. 과메기가 과연 어떤 이름을 달고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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