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렇게 달라졌지?"― 예전부터 알고 있던 도시의 거리를 오랜만에 지나다 보면, 낯선 공간에 처음 온 것 같아 어리둥절하다. 그전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변했다. 서로 비비대며 옹기종기 붙어있던 지붕 낮은 집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뜨거운 햇빛 아래 초로의 농부가 허리 구부려 일하던 도시 근교의 논밭, 송아지가 제멋대로 뛰놀던 산자락의 언덕배기에도 생소한 서양식 명찰을 단 아파트가 거만하게 서 있다. 도심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하늘을 덮고 있는 초고층 건물이 갑자기 눈앞으로 달려든다. 이름하여 주상복합.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면 그 어마어마한 위용에 눌려 납작 엎드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저렇게 높은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가?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다가 대구로 온 친구는 십여 년 전 강남의 아파트를 팔아버린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안타까워한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다면 아마 수십 억은 될 것이다. 평생 월급을 저축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에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부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리라. 세상과 특정 인물을 향해 '죽일 ×' 등으로 造語(조어)되는 숱한 화살을 퍼붓는다. '復讐舌戰 (복수설전)'이다.
"나도 한 건 해야지."― 고층 건물과 아파트 숲은 대도시 삶의 공간적 상징이다. 도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유롭고 무책임한 대중들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익명의 개인이다. 그들은 상호간의 결속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공동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믿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 불안 때문에 더욱 개인적 욕망의 높이를 더해 간다. 防柵(방책)을 쌓듯이 돈을 쌓고 또 쌓는다. 쌓지 못한 사람은 욕망의 비열한 칼날을 세운다. 기회가 오면 한 건 하겠다는 각오다.
그러고 보니 사각의 도시 건물들은 외형이 마치 지폐 뭉치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다. 돈의 키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된 이기적 욕망의 열기가 도시를 후끈하게 달구고 있다. 부동산으로 한몫 잡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도 復讐血戰(복수혈전)을 은밀하게 계획하고 있다.
"그들은 분별력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여/ 어둠 속을 헤매고만 있으니/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시편 82장)― '시편'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오늘을 살고 경영하는 현대인은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으려는 사람들이다. 시칠리아 에트나의 활화산 불길 속으로 몸을 던져 영혼의 윤회를 얻으려고 한 엠페도클레스와 같은 무리다.
잡히지 않는 허망한 욕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헛되이 허비하고 있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고층 건물을 높이 올려 물질적 욕망을 채우려는 설계도에는 저승의 자리를 찾기 위해 헛되이 애쓰는 나약하고 텅 빈 영혼들의 무모함이 넘쳐흐르고 있다. 迷妄(미망)에 빠진, 불쌍하고 가난하고 약한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누운 풀처럼 욕망의 키를 낮추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鎭靜(진정)이다. 병들고 타락한 영혼을 구원해 줄 진정제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진정성 회복'이라고들 말한다. 현대문명의 물질적 이기주의로 망가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진정성 회복의 논리는 근대사회가 시작되면서부터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그럴 때마다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는 비슷한 해결책이 제안되곤 했다. 비법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슷한 발언의 반복도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삶은 언제나 경제적 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반면에 우리의 의지와 계획이 물질적 여건을 통제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첫 단계가 각자 물질적 욕망의 높이를 낮추는 자기만의 방안 모색이다. 물론 그 방안은 물질적 가치의 난폭함에 대한 진정성 회복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재기(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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