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수렵현장] (중)밀렵현장을 잡아라

야생동물의 겨울나기는 힘겹다. 먹잇감이 적기도 하지만 '밀렵' 때문이기도 하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올무나 덫, 그물, 총포, 독극물 등 도구도 다양하다. 이런 밀렵꾼을 쫓는 단속반도 숨가쁘다.

12일 오후 11시 안동시 와룡면 산야리 삼거리.

안동댐 뒤로 통하는 산길과 와룡면소재지로 통하는 농로가 한곳에 연결되는 곳으로, 철마다 불법 밤사냥꾼이 설치는 길목이다. 1시간쯤 기다리니 조용하던 댐쪽 산 고갯길에서 불빛이 뻗치며 넘어온다. 댐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에 산란된 긴 빛이 산골 구석구석을 누빈다. 이곳저곳을 비추던 라이트가 한곳에 고정되는가 싶더니 이내 총소리가 산골짜기 정적을 깨뜨렸다.

'탕!- 타탕!' 산천을 뒤흔드는 총성. 엽총의 연발 사격이 끝나고 한참 조용하더니 헤드라이트 불빛을 낮춘 지프형 차량 한 대가 삼거리로 들어온다. 이들은 본지 취재진과 맞닥뜨리자 와룡면소재지 쪽으로 속도를 내 달아난다. 취재진이 뒤따르자 영주 방면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다음날인 13일 오전 2시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

안동에서 청송방면으로 달리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길옆 산길로 접어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수석에서 서치라이트가 켜지면서 산길 주변을 샅샅이 비춘다. 라이트에 반사된 야생짐승의 파란 눈빛을 찾는 것. 30여 분이 지났을까. 이내 또 한 대의 밀렵꾼 차량이 진입한다. "매일 밤 밀렵꾼들의 총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다."는 마을 주민들 호소는 사실 그대로였다.

이들이 상습적으로 밤사냥터로 잡고 있는 곳은 길안면 구수리와 임동면 박곡리, 와룡·임하·서후면 일원. 인적이 뜸하고 외딴 마을로 통하는 비포장 산길의 경우 하루저녁에만 서너 대의 밀렵차량이 출몰했다. 야간사냥에 나서는 밀렵꾼들은 대도시에 사냥감을 밀거래하는 전문꾼들. 멧돼지 140만 원, 노루 50만 원, 고라니 30만 원, 너구리 10만 원, 산토끼 5만 원 안팎에 팔아넘긴다.

"고성능 서치라이트와 엽총, 조준경을 부착한 공기총을 동원한 밀렵꾼들이 하루저녁에 고라니 몇 마리씩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죠. 왜냐하면 눈비가 오는 궂은 날이면 산짐승들이 인가 주변이나 산길 가까이로 내려와 서성이는 습성이 있거든요. 서치라이트에 발견되면 잡힌 거나 다름없지요."

지역 수렵인 권세한(48·안동 남선면) 씨는 몰지각한 밀렵꾼이 산짐승 씨를 말린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13일 오후 6시 영주 안정-단산-봉화(30㎞)를 잇는 야산.

한국조류협회 영주지부 밀렵감시단이 밀렵꾼들이 많이 드나든다는 손전등을 들고 도보 순찰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밀렵꾼들에게 매번 속아요." 이재용(52) 대원은 "요즘은 단속을 피해 아예 차는 돌려보낸 뒤 사냥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차를 다시 불러 타고 나갈 정도"라고 말했다.

자칫하다가는 밀렵꾼들이 쏜 총탄에 맞아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대원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인기척이나 불빛을 찾아 나섰다. 10여 분쯤 흘렸을까? 대원들이 하나둘씩 돌아와 "이상 없음"을 보고한 뒤 차량에 올랐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밀렵꾼들이 안 나타나려나 봐요." 대원들 중 막내인 황민철(33) 씨가 섣부른 예측을 내놓았다. 이러기를 수차례. 임도를 지나는 차량을 발견했다.

"드디어 나타났군." 차량을 세우고 운전석과 차 트렁크 등 구석구석을 수색했다. 다행이었다. 인근 공사장에서 늦게 일을 마친 노무자가 지름길인 산길로 귀가하는 길이었다.

대원들은 또다시 밀렵꾼들이 드나드는 길목에 차를 세우고 진을 쳤다. 아예 시동까지 끄고 기다렸다. 추위가 엄습해 왔다. 유호종(55) 대원은 "시동을 켜놓으면 밀렵꾼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라고 말했다.

"단속하다 보면 별별 사람 다 만나죠." 밀렵감시단의 홍일점 박금순(52·대한조류협회 영주지부 부회장) 씨는 "밀렵꾼들은 단속되면 다양한 형태의 반응을 보여요. 내가 누군지 알아(배짱형), 한번만 봐주세요(아부형), 얼마면 되겠소(거래형), 살려주세요(통곡형), 집에 환자가 있어서(사연형) 등의 방법으로 접근해 오죠. 하지만 일단 단속되면 태도를 바꿔 입에 담지 못할 욕설, 멱살잡이, 협박까지 해옵니다. '뇌물 받았다, 죽이겠다, 두고보자···.' 온갖 협박과 구설수에 시달리지요."

2시간쯤 흘렀을까,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밀렵꾼 사냥에는 실패했지만 대원들 얼굴은 밝았다.

"밀렵이 사라지는 날까지 단속의 끈을 놓지 않아야겠지요."

김병주(57) 회장은 "밀렵 행위가 날로 대담하고 지능화해 단속에 어려움이 크다. 체계적인 단속을 위해서는 제도적·법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