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시장이 개방되면 그 후폭풍은 엄청나다. 1만 7천여 명의 한의사들이 국내 경쟁에 안주했던 시장보호의 틀이 깨지고 글로벌 경쟁으로 내몰리는 셈. 한의약계의 전면개편도 점쳐진다. 미국의 아시아의학과 우리 한의학은 의사 양성 과정은 물론 학제, 교육 내용 등도 현격한 거리가 있다.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한·미간 자격 상호 인정제가 시행되면 그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의약의 세계화, 표준화를 추진,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시장 개방 어떻게= 한·미는 한의사 자격 상호인정에 의견접근을 본 상태다. 이를 포함해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수의사 ▷건축사 ▷엔지니어 등 20개 가까운 전문직의 양국 간 상호 인정을 위해 '전문직 자격 인정 협의회'를 구성키로 했다. 한의사 시장 개방에 따르는 구체적인 방안은 이 협의회를 통해 논의된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한의사 개방 요구를 딱 잘라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 우리측이 17개 전문직의 상호인정을 요구해 놓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한의사만 그 대상에 포함시켜 놓고 있기 때문.
한의사 상호 자격인정의 구체적 방안을 놓고서는 몇 가지로 갈린다. 우리 한의학과는 6년제인데 반해 미국의 아시아의학과는 거의 대부분 4년제로 학제 자체가 다른데다 학과목, 교육 과정도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자격은 상호 인정하되 국내에서 활동하려면 몇 가지 과목을 추가 이수토록 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보다는 양국의 자격증을 그대로 인정, 한·미 어느 나라에서 활동하든지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 쪽에 훨씬 더 무게가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한의사들로선 당장 '경쟁 격화→수익구조 악화'가 예상되지만 한의약의 세계화, 표준화, 규격화가 불가피해지는 만큼 중장기적인 측면에선 득실이 명확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오히려 우리 한의사가 미국에 진출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 중국은 그동안 중의학의 한국진출을 강력 추진해 왔다. 만약 한·중 FTA 협상이 시도될 경우 한의약 시장 전면개방과 중의사 양성 교육기관 설립 허용 등이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분석될 정도다. 한·미간 상호인정제가 시행되면 중의사들의 국내진출을 막을 명분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의약계 인사들의 관측이다.
◆아시아의학이란?=미국에선'한의학'에 준하는 것으로'아시아 의학','동양 의학'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남가주 대학 등 49개대학에 아시아의학과가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중 정식 인가된 곳은 39곳. 대부분 4년제로 운영되나 3년 만에 조기 졸업을 할 수도 있다. 이들 대학 교과과정은 중의학 중심으로 돼 있다. 국내에선 흔치 않는 기공학 등이 그것이다.
수업은 임상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의학 관련의사들은 전체적으로 6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한국인 교포가 1만 6천여 명, 중의사가 2만여 명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미국 현지인들. 한의사 자격이 상호인정되면 한국인 교포, 중의사가 국내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또 국내 입시생이 미국의 아시아의학과로 유학, 자격증을 취득한 뒤 국내에 유턴해 개업하는 상황이 가능해진다. 우수인재들이 몰리는 국내 한의학과 입시를 피하면서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국내 반발=생존권이 걸린 문제인 만큼 일대 결전도 불사한다는 강경 반응이 대세다. 한의사협회는 21일쯤 한미FTA 대책위원회를 구성,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키로 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협회는"국가 중대사인 보건의료정책을 결정할 때 협회와 긴밀히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방적 통보만 하고 있다."면서"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는데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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