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172건의 차량방화사건이 발생, 37명이 붙잡혔다.(표 참조) 이 중 홧김에 불을 지르거나 불을 지른 사람이 누군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고 연쇄차량방화로 의심되는 용의자를 검거한 경우는 단 5건뿐이다.
경찰은 "방화범도 점점 지능화돼 가고 있어 검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붙잡더라도 '불을 지르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기소가 가능해 현장 검거를 최우선에 둘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범인을 검거하려면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경찰의 고전적 철칙에 따르면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잡힌 5건의 차량방화 용의자들은 모두 자신의 집 가까운 곳에서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 제보 등 목격자의 신고가 결정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왜 불을 지르는가=부모의 잦은 싸움 등 '가정불화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재미있어서', '꾸중을 들을 때마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취업이 안 돼' 등 경찰에 붙잡힌 용의자들의 방화 이유는 제각기 달랐다. 강덕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은 "사람마다 스트레스 해소법이 다른데 적절한 해소법을 못 찾아 혼자 고민하다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강 과장은 "이들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얌전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스트레스 때문에 재산 가치가 없는 쓰레기더미 등에 방화를 시작했다가 횟수가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 불을 즐기게 돼 방화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방화범은 잡아도 문제=지난해 3월 효목동 일대 초교 2, 3학년 학생 3명이 불을 붙이는 것에 재미를 느껴 장난삼아 불을 낸 것이 차량방화로 연결됐다. 하지만 이들은 형사미성년자로 기소되지 않았다. 증거가 명확해 보여도 실형으로 연결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월 대구 서부경찰서는 차량방화 혐의로 이모(22)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 씨 본인이 불을 질렀다고 자백했고 범행에 사용된 라이터도 범행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화단에서 찾아내 범인임을 확신했지만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주민신고는 보조요건이 아닌 필수요건=경찰에 검거된 용의자들은 초교생들을 제외하고 모두 주민들의 결정적인 신고에 의해 붙잡혔다. 주택가에 밀집한 차량들 사이에서는 방화범이 마음만 먹으면 1분 내에 불을 지르고 도망갈 수 있기 때문에 경찰로서도 한계가 있는 것. 실제 지난해를 전후해 연쇄차량화재로 골머리를 앓던 동부경찰서는 주민 홍보를 강화,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 용의자는 신암동 덕성초교 부근 주택가에서 영업용 택시 뒤에 쪼그리고 앉아 범퍼에 불을 지르다 동네 주민이 발견, 경찰에 신고해 그 자리에서 붙잡힌 것. 경찰 관계자는 "CCTV 등의 고성능 물품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도움이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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