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류승완의 창의적 실전논술) '현학적 표현 오류'에 빠지기 쉬워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습관적으로 동원하는 인용구들이 있다. 여성 문제-'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시몬느 드 보부아르)/법과 사회문제-'악법도 법이다.'(소크라테스)/인간의 존엄성-'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파스칼)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누구나가 다 아는 이러한 관용구 표현으로 인해 자신의 논술 답안이 평범한 답안으로 전락할 위험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널리 잘 알려진 인용 표현들은 다른 수험생들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독창적 답안이란 인상을 채점자에게 줄 수 없다. 또 전문적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용하는 철학 용어 같은 '현학적 표현의 오류'들은 채점자에게 감동이 아닌 짜증을 줄 뿐이다.

국어나 사회탐구 등 교과서 범위 내에서 배운 이론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좋은 시도지만 억지로 꿰어 맞추는 듯한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김삼용은 소중한 친구 1명과 암벽 등반을 하던 중 조난을 당했다. 김삼용과 자일을 연결해 뒤따라 암벽을 오르던 친구가 미끄러지면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친구는 정신을 잃었고 기온은 영하로 급강하했다. 친구와 김삼용의 몸은 서로 자일로 연결되어 있어서 자일을 끊지 않는 한 꼼짝없이 함께 죽게 될 형편이었다. 김삼용은 고민 끝에 친구와 연결된 자일을 끊고 자기 혼자만 살아남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는 김삼용을 비난할 수 있는가? 김삼용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했는지 여부에 대해 근거를 들어 논술하시오.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심각한 도덕적 위협을 야기할 때 우리는 이를 '도덕적 딜레마'라고 말한다. 에서와 같이 김삼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친구를 버려야 할 것인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을 말하는데 대입 논술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마이다.

이에 관한 논술 답안을 쓸 때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상황 설정과 보충 설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김삼용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도출할 경우 도덕적 명분만을 위해 김삼용 자신의 생명까지 버려야 하는가라는 반박 논리에 대응하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따라서 자일을 끊은 김삼용의 행동에 대한 상황의 불가피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전제가 뒤따라야 한다. 또 김삼용은 상황이 어찌됐건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친구를 버리는 선택을 한 만큼 살아남은 대신 도덕적 비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끌어 가면 된다.

한편 김삼용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으며 도덕적 정당성 유무를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결론을 이끌 경우 상황의 불가피성을 강조해야 한다. 자일을 끊지 않았다면 둘 다 죽는 상황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러한 선택이 오히려 무의미한 희생이라는 근거를 도출해 낸다. 이 경우 동원해야 할 유일한 수단이 자일을 끊는 것뿐이었다는 한계적 상황과 자일을 끊는 행위가 한 사람(김삼용)의 고귀한 생명을 구하는 '효용성'이 전제됐다는 논리가 순환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도덕적 딜레마'와 관련, 고교 교과서(윤리와 사상 116~117쪽)는 '의무론적 윤리와 목적론적 윤리'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의무론적 윤리는 행위의 결과보다는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된 의지나 동기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목적론적 윤리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가 선하고 옳은 행위이며 효용성을 중시하고 있다. 최근 논술고사 출제 경향이 교과서 내용 중심인 만큼 답안 작성 시 교과서 내용을 적절히 인용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김삼용이 친구와 연결된 자일을 끊을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은 한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를 다룬 문제이다.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는 현실 생활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친구를 돕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든지, 거리에서 주운 돈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불우이웃 돕기에 쓰는 사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선택한 행위들은 대부분 도덕 기준에 위배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행위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아 대부분 사람들은 융통성 있게 다양한 수단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선택해야 할 행위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 귀결되는 중대 사안이거나 감옥을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협이 예상된다면 우리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김삼용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런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인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사람의 행위가 도덕적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의 불가피성과 효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일을 끊은 김삼용의 행위가 불가피했는지 여부와 그 행위에 따라 어떤 효용을 거두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김삼용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자신만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둘 다 죽음을 택하는 길이었다. 둘 다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당시 상황으로는 찾기 불가능했다. 결국 자일을 끊은 김삼용의 행위는 그에게 마지막 남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또 인명 손실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김삼용 한 명의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효용성을 거둘 수 있는 보다 현명한 선택이라는 점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김삼용의 행위는 수단의 불가피성과 효율성으로 도덕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하겠다.

김삼용의 선택은 서양의 윤리 관점인 '목적론적 윤리'로도 행위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있다. '목적론적 윤리'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선하고 옳은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김삼용은 한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가 기대되는 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목적론적 윤리'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행위에 의해서 생겨날 쾌락과 고통의 양인데 김삼용의 행위로 두 명이 죽는 대신 한 명의 생명이 살아남으로써 쾌락은 늘어나고 고통은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김삼용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으며 최소한의 도덕적 이해 내지는 양해를 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쁜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김삼용의 행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논술 tip : 철학 개념을 모르고 적용한 답안 오류 사례

㉠김삼용이 친구의 자일을 끊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이 상황에서는 칸트로 대표되는 보편주의와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의 도덕적 윤리관의 대립이 이루어지면서 도덕적 딜레마가 형성된다. ㉢보편주의는 도덕적 원리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이는 보편적인 것이므로 나의 행동은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리주의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공리주의에서는 개인의 행복 추구가 곧 사회의 행복추구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김삼용의 행동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것이므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도덕적이다.

내용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철학 이론을 무리하게 적용해 자신도 모르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에서와 같이 칸트는 인간 생명의 소중함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선의지(善意志)만 절대적으로 선할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에서도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답안에서는 '나의 행복이 곧 사회의 행복'으로 변질되는 난센스를 범했다. 굳이 이해도 못한 사상이나 철학자의 이름을 언급해가며 감점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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