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뉴 라이트 교과서' 논쟁

지난 11월 서울대 사범대 교육정보관에서 열린 '교과서포럼 제6차 심포지움'을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날 내놓은 것이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시안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고 있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내 놓고 있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각계의 비판과 비난이 들끓게 되자, 책임자들은 '시안'이라는 말로 발뺌했다. 자신들도 미처 검토하지 못한 내용이며 필자만의 의견이라고 에둘러 얼버무렸다. 만약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시안'이라는 말로만 계속 버티었을까.

문제는 그들이 대안교과서에 담은 한국 근현대사의 내용이다. 필자도 아직 그 '시안'이라는 것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된 것을 중심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보도된 대로라면, 언론측에서 가장 민감하게 보았던 내용들은 한국 현대사에 나타난 사건들이다.

4.19를 비롯하여 5.16, 유신체제 및 5.18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었다. 4.19를 단순히 학생운동으로만 표기했고 4.19 후에 학생운동조직이 견제되지 않은 권력으로 등장했으며 그 뒤 좌파가 학생운동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5.16은 혁명으로 표기했고 산업화를 주도할 대안적 통지집단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유신체제에 대해서도 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이 등장했고 행정적인 차원에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고 서술했다. 거기에 비해 5.18은 광주민주화항쟁으로 표기하고 발전과 중앙권력으로부터 광주지역의 소외가 누적된 탓으로 일어났으며 한국 사회에 반미급진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썼다.

교과서포럼의 이같은 서술은 문민정부 이래 대체로 준용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시각이나 의미규정과도 달랐고, 또 정부의 그런 시각을 반영하여 제작된 종래의 교과서들과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차이를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종래 우리 사회가 고민하면서 합의·정착시킨 역사적 평가를 번복했다. 좋게 말하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반대로 말하면 '이념색맹 수준'을 넘지 못한 쿠테타적 발상이다.

앞에서 그들이 평가했던 몇 몇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어렵게 정착시킨 합의의 내용은, 4.19를 혁명으로, 5.16을 군사정변(쿠테타)으로, 유신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헌법위에 존재하는 대통령을 둔 독재체제로, 5.18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본다는 것이다.

교과서포럼이 시안 교과서를 통해 던진 문제 중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기술한 대목에서 그들의 예사롭지 않은 시각이 드러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서술한 항목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영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설명하면서 농민과 지주가 혜택을 입었고 한국의 산업화를 위해 크게 기여한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마치 일제 식민주의 사관론자들이 한국사의 정체성론을 주장하면서 일제의 한국 강점을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것으로 변명하는 것을 듣는 듯하다. 이런 관점이고 보니 광복 후의 기술부분도 "친일파의 입지를 넓히는 쪽으로" 더 나아가서는 일본군 장교출신이었던 박 대통령의 업적을 '조국 근대화작업'을 위한 측면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에 의해 추진된 한일협정을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준' 긍정 일변도의 사건으로 기술했다. 그러나 이 시안은 한일협정에서 빠뜨린 대일청구권 문제와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있으며, 우리가 일본 교과서에 대해서 그렇게 요구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거론하지 않았다. 비판자들이 뉴라이트 교과서를 두고 일본의 '새역모'를 연상하고 신친일파로 몰아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과서는 그 사회가 합의한 기존의 가치관을 전제로 하여 후세들에게 미래 지향적 가치관을 제시하는 학습교재다. 따라서 학계나 사회 공론의 합의가 꼭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도, 기존에 출판된 것이든 미래에 출판될 것이든, 학계의 충분한 토론과 검증을 거친 내용을 실어야 한다.

교과서포럼의 교과서 시안이 사회적인 합의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면, 그들은 그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구나 그들의 주장대로 기존 교과서의 대안으로 내 놓으려면 '역사전문가'들로 조직된 검증팀이 있어야 한다. 교과서는 아마추어들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펴는 지면일 수는 없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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