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작가 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는 代筆作家(대필작가)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197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첫 문장이 '나의 말은 나의 말이 아니며 나의 웃음은 나의 웃음이 아니다'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결국 인기 코미디언의 자서전을 대신 쓰다가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과거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럽더라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 자신의 것으로 사랑할 애정'을 제시했다.
○…너도 나도 대필작가의 글재주를 빌려 책을 빛나게 하는 수려한 문장과 적절한 비유들까지 자기의 것인 양 버젓이 세상에 내놓는다. 더구나 독자들의 관심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자서전 위주의 대필 慣行(관행)이 재테크와 자기계발서, 문체와 감성 위주의 에세이'동화 등 어디 안 번지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대필작가들은 자료를 조사해 집필하는 '실질적 저자'지만 수입은 저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필 관행이 도를 한참 넘었다는 우려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지영 아나운서의 대리번역 파문에 이어 방송인 한젬마 씨의 책들이 대필 논란에 휩싸이면서 증폭되는 양상이다. 사실 정치인'기업인 등 저명인사 자서전 대필은 출판계의 공공연한 秘密(비밀)이다. 심지어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는 100%, 베스트셀러 10권 중 6, 7권이 대필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출판계는 대중소비사회를 맞아 갈수록 높아지는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필작가의 활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순수 창작활동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文人(문인)들의 입장에선 대필이 '창작의 물꼬를 터주는 단비 같은 존재'라고도 한다. 그래서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거다. 결국 '영혼을 파는 행위'라는 비난에도 돈을 받고 '유령'이 된 채 남에게 '저자'라는 왕관을 씌어주곤 한다.
○…대필은 분명 독자들을 속이는 詐欺(사기) 행위다. 요즘 특히 유행하는 아이디어 중심의 기획출판물들도 대부분 대필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으니 기가 찬다. 출판 倫理(윤리)에 어긋나는 건 말할 나위가 없으며, 이 관행이 바뀌지 않아서는 곤란할 것 같다. 굳이 대필을 시킬 경우 저자와 함께 대필작가의 이름을 명기해야 할 것이며 '재주 넘는 사람과 돈 먹는 사람 따로'인 모순도 당연히 바뀌는 게 옳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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