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한권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세상에 나온 때는 1988년이다. 수감 생활 중에 그가 아버지에게, 계수에게, 형에게, 동생에게 보냈던 편지를 묶어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된 때로부터 꼭 10년이 지나서 읽었다. 자주 눈에 띄었음에도 읽지 않았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자주 눈에 띈 탓이었다.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복역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던 그는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초로의 얼굴이 돼 세상에 나온 것이다. 무기징역, 말 그대로 '기약없는 징역'이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세상 모든 비극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 유한한 생명에, 무한한 징역형. 하루해가 저물 때마다, 한 해가 저물 때마다 퇴색해 가는 삶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다고 푸념하거나, 슬프다고 울지 않았다. 왜 불행하지 않고, 슬프지 않았겠는가?

불행과 절망의 가운데 있었지만 그는 외려 주변을 위로했다. 신영복은 머리 깎고 수의 입었지만 예의와 염치, 교양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 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신영복 교수는 수인이었지만, 편지마다 집안의 평안과 가족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 형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어린 조카를 걱정하며 '소년을 보살피는 일은 천체 망원경의 렌즈를 닦는 일처럼 별과 우주와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고 쓰기도 했다. 바깥에 사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함께 수형 생활을 하는 동료들에 대한 걱정도 많다. 우수와 경칩을 넘기며, 그는 이런 편지를 썼다. 아마도 부유한 편이었던 그의 집에서 겨울마다 내의를 넣어주었던 모양이다.

'겨울을 춥게 사는 사람들 틈새에서 해마다 어머님의 염려로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는 저는 늘 옆 사람에게 죄송합니다. 봄은 내의와 달라서 옆 사람도 따뜻하게 품어줍니다. 저희들이 봄을 기다리는 까닭은 죄송하지 않고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몸은 교도소에 갇혀 있지만 정진하려는 자세를 잃지도 않았다. 서예를 다시 시작하고, 논어와 맹자를 다시 읽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와 긍정을 엿볼 수 있는 편지, '저마다 진실'이란 제하의 편지는 '자기의 경험적 사실을 곧 보편적인 진리로 믿는 완강한 고집에서 나는 오히려 그 정수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의와 주체성의 일면을 발견합니다. 섬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 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며, 서울 사람에게 있어서 해는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사람이 산골 사람을, 서울 사람이 섬사람을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지구의 자전을 아는 사람은 이 우김질을 어리석다 깔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바다나 산이나 그런 구체적인 경험의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는가? 물론 없습니다. 있다면 그곳은 머리 속일뿐입니다.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이며 순수한 의미의 관찰, 즉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가치 중립적인 관찰이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일,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굽어보는 데 철학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어떤 이유로든 이 책을 꺼려온 독자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