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즘 어떻습니까] 이만섭 국회의장

"여·야 대결속 대화·타협해야"

8선의 국회의원에다 입법부 수장을 2차례나 역임한 이만섭(75) 전 국회의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 정치인이다. 1963년 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1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후 41년 동안 현실 정치에서 우여곡절을 몸소 겪었다. 그러면서도 큰 잡음없이 은퇴, 성공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제는 현실 정치에서 한 켠 물러나 세상을 바라볼 때도 됐건만 아직도 여전히 특유의 꼬장꼬장함(?)이 묻어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기자를 맞이했다.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은퇴했지만 각종 세미나와 인터뷰, 강연 등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답답한 현 정국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쓴소리도 건강해야 가능할 터. 건강 유지법부터 물었다.

15년 전부터 골프와를 담을 쌓은 그는"걷기로 건강관리를 대신한다."고 말했다. 점심식사 후 부인 한윤복(75) 여사와 함께 한강둔치를 1시간씩 걸으며 건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국회의장으로 있을 때도 국회 내에 의원동산이나 잔디밭을 걷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곤 했다. 바치춤에서 걸음 수를 측정하는 만보기를 내보이며"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화려한 의정생활을 하면서 대접받는 것이 익숙하겠지만 그는 현재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다고 했다. 의장 당시 경호차를 없애는 등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를 둔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깨끗하면서도 화려한 정치 인생을 산 덕분에 지금도 그를 찾는 후배 정치인들이 많다.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 단골 초대 손님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재오·박진·맹형규 의원 등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또 대구 대륜중 후배인 박종근 의원, 대륜고 후배인 김성조 의원 등과는 자주 만남을 갖는다. 이상득·이상배·이재창 의원 등은 종친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정국을 보는 예리하면서도 깊은 시각을 지녀 후배 정치인들이 수시로 연락, 고언을 듣는다고 했다.

이 전 의장은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과거 여러 정치사건, 비사 등과 관련해 날짜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치부 기자들이 귀담아 들을만한 풍부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

실제 그는 대륜중 시절과 연세대 재학시절 응원단장으로 끼를 발휘하면서도 성적은 항상 상위를 유지했다.

대화는 자연스레 현실 정치로 옮겨갔다. 그는 항상"정치와 사랑은 계산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정치하면 권력투쟁, 음모, 배신, 협잡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고지순해야 하는 사랑과 비교하는 것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정치는 꾀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 40년 정치를 하면서 계산해 본 적이 없다. 옳다고 생각하면 소신대로 해 왔고 신변위협이나 개인의 불이익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시절, 그의 가장 큰 공로는 고질적인 국회 날치기를 없앤 데 있다. 때문에 14대 의장 시절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16대 의장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부 기자와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국회의 가장 암적인 존재가 날치기라고 생각했다. 날치기에 원한이 쌓일 정도였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반드시 없애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정치부 기자를 거친 데 대해 자랑스러워 했다. 정국을 보는 눈과 정치 감각 등은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단련됐다고 했다. 참여정부에 대해 그는 대통령의 코드인사와 다변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을 편가르기해 사회 알력이 심화됐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졌다. 이념, 지역, 세대 간의 대결과 갈등이 조장됐다."며 "대통령은 말을 줄이고 당을 떠나 조용히 남은 임기를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정계개편과 관련, "국민의 지지가 10% 미만인 정부와 여당이 통합파와 친노파로 나뉘어 눈만 뜨면 싸우니까 국민들이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며 "여당은 무릎 꿇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훈계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여당 불신에 대한 반사이익에만 안주하지 말고 정책 야당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며 "특히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고 내분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7대 국회에도 세대교체가 너무 빨랐다고 했다. "국회 내에 원로가 없어 완충지대가 없다."며 "과거에는 여·야가 싸우면서도 대화와 타협을 했다."고 지적했다.

친·인척이 있는 대구에 2달에 한 번꼴로 내려간다는 그는"박정희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1963년 당시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이던 국가를 이만큼 성장시킨 사람들이 대구·경북민"이라며 "앞으로 국가를 재도약시키는 것도 대구·경북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저항시인이던 이상화·이육사 등의 정신을 대구·경북민이 이어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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