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초선 의원이 고민하라

젊은 初選議員(초선의원)이 유독 많아 일하는 국회가 될 것이란 국민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17대 국회가 막바지다. 의원 임기는 1년 4개월 남짓 남았으나 12월 임시회에서 예산안을 처리하고 나면 내년은 완전히 대선 국면으로 넘어가 '사실상 17대 국회는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12월이 되면 늘 한 해가 참 빠르구나 하고 느끼지만 의원 임기도 지나고 나면 그렇게 빠르다.

대구'경북 지역도 초선이 적잖았다. 대구는 12명 중 절반이 넘는 7명이 초선이고, 경북은 15명 가운데 5명이 초선이다. 이들 역시 대구와 경북을 살리고, 정치를 바꾸겠다고 지역민에게 약속하고 당선된 사람들이다. 살기 힘든 대구'경북이니 당연히 그런 패기와 각오가 있어야 의원 자격이 있고, 지역민들은 그러리라 기대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을 보면 그럴 능력도 있어 보였다. 경제 전문가, 법률 전문가, 학자, 언론인….

그런데 이들의 임기가 다 끝나 가는데도 어쩐 일인지 대구는 여전히 지역총생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 동해안 도로 하나 20년째 완공하지 못했다.

초선은 과거에 국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選數(선수) 위주로 의정 활동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장관 출신인 중량급 초선의원이 의원 모임에서 품위 있게 발언하려다 나이가 젊은 재선 의원이 '어이, 박 초선' 하고 부르는 바람에 머쓱해져 말문을 닫았다는 逸話(일화)는 국회 주변에서 유명하다. '초선이 정치하려 하지 말라'는 말이 그래서 국회의 金言(금언)이다시피 했다.

하지만 17대 국회는 초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해 사정이 달랐다. 그러면 과연 대구'경북 출신 초선들은 그간 어떤 일을 했을까? 이들이 그간 한 일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한마디로 '정치와 정쟁만 하고, 지역을 위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초선들은 정쟁에서는 정말 경쟁력이 있었다. 여야가 대립하는 사안을 놓고 TV토론이 벌어지면 단골로 출연해 목소리를 높였다. 의장 단상 점거에는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른바 대권주자 줄 서기에도 누구보다 발 빠른 느낌이다. 누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 누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브레인이란 소문이 자자하다. 이런 얘기가 들리면 당사자는 은근히 즐기는 듯하다. 또 어떤 초선 의원은 낮에는 박근혜계, 밤에는 이명박계란 뜻의 '박명박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반면 우리의 초선 의원들이 만든 법안과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없다'다. 경주 정종복 의원이 경주역사문화도시특별법을 만들려 안간힘을 쓰고 있고, 대구 달서병 김석준 의원이 국립대구과학관 유치에 한몫한 정도가 눈에 띄일 뿐이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지원을 위한 국회 특위를 구성하지 못해 대구시가 안달을 할 때 초선 의원들은 누구 하나 입도 떼지 않았다. 3선으로 국회의원 가운데 일곱 번째 나이가 많은 박종근 의원이 여권 인사와 접촉하고, 결국 특위 위원장까지 맡았다.

물론 초선들이 우리 동네에 도로도 놓고, 다리도 만들고, 학교 강당도 지었다고 항변한다면 할 말이 없다. 힘없는 야당 의원이라 일할 여지가 없었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해 줄 수 있다. 대선에서 이겨 제대로 일하겠다고 유보하면 또 넘어가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날로 커지는 경기도, 57조 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전남, 수도권화하는 충청도를 보면 또 '우리 의원들은 뭐 하나'란 생각과 함께 울화통이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초선들에게 마지막으로 주문하고 싶다. '정치와 정쟁은 다선 선배들에게 맡기고 일을 하라. 지역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고, 지역민과 함께 호흡해 비전을 만들어라. 젊은 초선 의원들이 지역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맹렬하게 실천하라. 그러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고대하듯 한나라당이 대권에서 승리해도 그대들의 웰빙은 있을지언정 경북의 미래와 대구의 내일은 없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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