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인간에 대한 예의

줄탁이란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닭이 바깥을 쪼으면 병아리는 안에서 함께 쪼아서 껍질을 깨고 나온다고 한다. 안과 밖의 상응이다. 선방(禪房)에서 즐겨 줄탁이란 말을 쓴다. 화두를 짊어지고 용맹정진하는 제자에게 노선사가 툭 던지는 한마디 말에서 활연대오하는 경우가 있다. 공부를 줄탁에 비유하곤 한다.

언젠가 읽은 글에 일본에서 사무라이 칼을 만드는 명인이 있었다. 그는 철저한 도제(徒弟) 교육으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칼을 벼리는 물에 허락도 없이 제자가 손을 집어넣자 그 자리에서 제자의 목을 베어버렸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 정도는 되어야 도제 교육이 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스승은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나는 지난 11월 18일 본란에 '어린왕자의 꿈'을 실었다. 대학 4년동안 공부에만 전력하였지만 졸업을 하지 못해 상심하는 딸을 위해 쓴 글이다. 이 땅의 아버지로서, 시인으로서 이 글이 다소라도 딸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교 50주년을 맞은 이 대학 게시판에 딸아이는 이 글을 올렸고, 동아리 선배가 댓글을 달았다. 오랫동안 후배를 지켜보면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이다. 정의감으로 사실에 입각한 댓글을 올리자 모 교수가 이 댓글을 보고 딸아이의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삭제해 줄 것을 요구, 1시간만에 댓글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이 교수는 댓글을 올린 제자뻘인 딸아이의 선배를 '명예훼손죄'로 경찰에 고발까지 하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란 줄탁과 같아야 한다. 선생에겐 교권(敎權)이 있다면 학생에게 학습권(學習權)이 있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한쪽을 억압하면 균형이 깨어지기 마련이다. 올바른 교육이란 평등권을 기반으로 하여야만 가능한다. 일방적으로 교권을 앞세워 한 아이의 장래를 망치는 일은 더 이상 대학에서 있어서도, 일어나서도 안될 것이다.

저물어 가는 세모에 적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살아야 한다. 향싼 종이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는 비린내가 나기 마련이다. 나는 '어린왕자의 꿈'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지겠다. 그렇게 당당하다면 댓글에 대해 시비를 걸지 말고, 이 글에 대해서 정정당당하게 시비를 걸어라. 이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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