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힘은 위대하다. 영국에서 귀족가문을 창건한 이야기 중 텐더슨 경의 故事(고사)는 잊히지 않는 일화로 남아 있다.
텐더슨 경은 출신이 미천했을 것이나 그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높은 지위를 얻은 것이 오직 자신의 근면, 연구, 專念(전념)의 덕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아들 찰스를 데리고 당시 켄터베리 중앙성당의 서쪽 건너편에 있던 조그만 판잣집으로 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얘야, 저 조그만 이발소를 보아라. 저 집을 보여주려고 내가 일부러 너를 데리고 온 것이야. 저 이발소에서 너의 할아버지께서 손님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1페니(약 20원)의 돈을 받으셨단다. 저 집은 내게 가장 자랑스러운 추억을 남겨주는 곳이지…." 한때 지구의 절반을 지배했던 영국인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주시 중부동 7통의 새마을지도자 황종섭(새마을지도자대회 대통령표창 수상) 씨는 가난한 산골마을 출신, 빈농의 아들이다. 경주시 현곡면 상구 2리, 여섯 살 되던 해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병석에 누워 계셨으므로 그는 조부모님 슬하에서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해야 했던 그의 유년기…. 동생이라도 공부를 시키자는 각오로 중학교 2학년을 중퇴, 남의 집 머슴살이를 시작했고 기술이라도 배워보자는 심정으로 이용사 자격증을 따기까지의 6년 세월.
오늘은 그가 고아원생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날이다. 자신의 손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번듯하게 만들고 나면 황 씨는 보람만큼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무료이발 봉사도 벌써 27년이 되었다. 한 번은 몸이 아파 제 날짜에 가지 못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보모 선생님들과 원생들이 음료수를 사들고 가게로 찾아와 황 씨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는 미담도 들려온다. 연말에 고사리손 원생들로부터 "아저씨, 올해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쓴 연하장을 받을 때, 더운 여름날 무거운 방역장비를 들고 전염병 예방을 위해 방역봉사를 하는 그에게 주민들이 내미는 시원한 냉수 한 잔, "약치는 아저씨 왔다!"고 좋아하며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동네 꼬마들, 그리고 새마을 자율방범대를 조직해 우범지대를 순찰하면서 불미스런 일들을 줄이는 일에 동참했을 때 그의 가슴은 벅차오른다.
그가 경영하는 경주 시내의 '부부고도이용원'은 그 당시 마을문고 겸 고물상이었다. 현재는 (구)성내동사무소 자리에 3천900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어 컴퓨터방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92년 2월부터 새마을 자원재활용 사업을 추진하여 총 1천648t을 수거함으로써 1억 498만 원이라는 엄청난 소득도 올렸다.
이 금액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폐품교환용 재활용 화장지를 구입하며 새마을문고의 신간도서를 산다. 그는 현재 1천200만 원인 잔고가 5천만 원이 되면 장학재단을 만들어 불우이웃 자녀를 공부시킬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의 도서를 대출받았던 사람은 총 2만 7천800여 명, 책은 총 6만 7천300권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했던 동생이 서울로 대학입시를 보러가기 전날, 여비가 없어 결국엔 가지 못한 채 자취방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던 일, 부부가 함께 밤에는 포장마차를 하면서 사글세방을 찾아 수없이 이사 다녀야 했던 일 등이 황 씨의 마음 한구석에서 아직도 메아리친다. 그는 가난과 自助(자조)의 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 머리카락이 아닌 가난의 고통을 깎아준다. 그의 손길에서 나오는 善(선)의 빛을 이른바 웰빙의 탁류에 젖은 현대인들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전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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