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서종택 作 '또, 한 해가…'

또, 한 해가....

서종택

지나간 일 년도 꿈이었다 생각하세요

우산 위에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삶 전체가 그냥 그렇게 흘러내렸습니다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인생이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처럼 덧없이 사라졌지만

당신은 본래대로 거기에 있네요

내가 말했던가요?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된 것도

나에게 무한성이 있음을 알게 된 것도

다 당신 덕분이었다고

옛날에 내가 단순하고 속된 욕망을 가졌을 때

처음 당신 만난 곳이 어디였나요?

먼저 열렸다가 닫혀버린 눈꺼풀, 거기였나요?

숨 쉬는 눈꺼풀 아래

서로가 서로의 속으로 사라지던 곳

멈출 수 없는 그곳에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빠져나오기도 했었죠

이제 내가 나 자신에서 멈추지 않고,

시를 쓰기 위하여

지금까지 써온 것처럼 쓰지 않기 위하여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게 날 내버려 두세요

가다가 넘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내 모습

더 많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한 해가 저물고 있는 지금, '당신'에게 못다한 말을 해 봅니다. 속엣 말을 들어줄 수 있는 '당신'이 계신다는 것이 큰 행복입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인간 존재는 유한하다고 생각하고 '속된 욕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당신으로 하여 내가 무한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려 합니다. 그곳에 '가다가 넘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내 모습/ 더 많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현재의 '나'를 통해 새로운 '나'를 찾겠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나'를 돌아보는 일이 새해 맞이의 마음일 것입니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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