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줌 인 줌 아웃] 한갑수 대구진학지도협의회장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한갑수 대구진학지도협의회(이하 대구진협) 회장은 말보다 눈과 손이 앞선다.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손으로 계산해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는 성미. 천생 수학 교사인데다 1점 차이에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이 울고 웃는 대학지원 기준표를 오래 만들어온 탓일 게다.

마침 2007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오후 그를 만났다. 6박7일 동안 대구진협 교사들과 합숙하며 지원 기준표를 비롯한 진학지도 자료 제작을 19일 오전에야 끝내고 곧바로 이날 오전까지 학생들과 진학 상담을 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었을 법한데도 그는 쌩쌩해 보였다. "원서 접수가 마감될 때까지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지요."라며 싱긋 웃었다.

겨우 몇 페이지짜리 지원 기준표에다 책 한 권 분량의 자료집이지만 꼬박 1년이 걸린 '작품'이다 보니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겉만 보면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대구의 모든 진학지도 교사들이 일 년 내내 공을 들인 결과물입니다. 한 해 대학입시가 끝나는 2월 말부터 이듬해 입시가 시작되는 거죠."

대학별 합격자와 불합격자, 최초 합격자와 추가 합격자, 등록 포기자 등을 고교마다 파악해 모으는 일이 첫 단계다. 말이 쉽지 수만 명의 입시 결과를 한 데 모으면 엄청난 자료가 된다. 이를 분석해 학과별 합격선을 파악한다. 수도권은 지원자가 많지 않아 다소 어렵지만 대구·경북권 대학은 거의 모든 학과의 합격선이 확실히 눈에 들어온다. 여름방학 때까지 꼬박 매달려야 하는 일이다.

2학기 들면 수시모집 지원에 대해 학교별로 상담이 이루어지고, 수능시험을 칠 때까지 대학·학과별 지원 서열을 조정하는 지난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수험생들의 선호도 분석, 대학과의 협의도 이때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마다 학생들이 선호 또는 기피하는 학과가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데다 각 학과에 대한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 방안, 커리큘럼, 장학 혜택 등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을 치른 뒤 가채점 결과를 모아 진학 상담 자료를 만드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성적 발표 때까지 수험생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할 지 맞춤식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는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최대한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 탓이다.

수능 성적이 발표된 뒤의 작업은 상당한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한다. 한 회장은 수험생들의 성적 분포에 맞춰 학과별 지원 가능점을 결정하는 일에는 정밀한 수학적 계산과 함께 작업에 참가하는 모든 교사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학과별로 전년도 결과가 다소 떨어지거나 오른 이유를 분석하고 어느 위치에 놓을지 결정하기 위해 몇 번이고 토론을 합니다. 최소 3년 동안의 결과를 갖고 조정하기 때문에 이견이 많지는 않지만 변화가 심한 일부 학과는 며칠이고 토론해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준표의 신뢰도를 높이고 지역 수험생들의 입시 결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일이라 적당한 타협은 없다고 했다.

올해로 학교(경상여고) 연구부장을 맡은 지 10년째. 기준표 만드는 일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지도 8년이 됐지만 한 회장은 늘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학과별 경쟁률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학과, 합격선이 높아야 할 학과가 지원자 부족으로 합격선이 떨어지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변수도 워낙 많아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기준표를 믿고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학생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해 경우 경북대 기준표를 대학 변환점수 기준으로 했다가 큰 낭패를 봤다. 원점수나 표준점수에 비해 변동폭이 훨씬 큰데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해 1차 합격자 발표 때 대구 수험생들이 대거 고배를 마신 것. 다행히 추가 합격자 발표를 통해 어느 정도는 충격이 완화됐지만 곳곳에서 쏟아지는 원망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위험이 항상 예견되는 작업을 매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 회장은 "3년 동안 학생들이 땀 흘린 결과가 최대한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주요 입시기관들의 지원 기준표는 전국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 의존했다간 학력 차이가 있는 대구 수험생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행수로 좋은 학과에 가거나 열심히 하고도 원하는 데 못 가는 결과는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8학년도 이후 입시에 대해 그는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당부했다. 학생부 비중이 어느 정도 높아지겠지만 실질 반영 비율이 크게 올라가지 않을 것이므로 내신 성적이 나쁘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 수능이 등급화하면 어떻게 지원 학과를 결정하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수능 등급을 자격 요건으로 활용하는 대학보다 점수화하는 대학이 많을 것이므로 어느 정도 기준이 주어질 거라고 했다.

새 입시제도의 무난한 출발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그는 대학들의 입시 요강 조기 발표를 촉구했다. 3월 학기 시작 전에 구체적인 확정안이 발표돼야 안정적으로 입시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고교 입학 때 3년 뒤의 입시 제도를 확실히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빼놓지 않았다.

대구진협 회장직을 맡은 지난 3년 동안 동료 교사들에게는 늘상 미안한 사람,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바쁜 선생, 가정에는 불성실한 가장이 됐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이 더 크다는 한 회장. "고교의 많은 선생님들이 저 이상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믿고 선생님을 믿고 서로가 최선을 다한다면 가능한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주어 말하는 그의 어깨 위로 공교육에 대한 믿음과 불신이 교차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비쳤다.

글·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대구진학지도협의회는

진학 관련 정보 교류 및 진학지도 자료 제작과 공유를 위해 대구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협의체다. 사립 남녀 일반계 고교를 중심으로 활동이 시작돼 1981년 국·공립까지 참여하는 대구진학지도협의회로 출범했다. 1983년 1월 대구의 모든 일반계 고교가 참여한 가운데 전국 최초로 공교육 단위에서 제작한 대학지원 기준표를 발표해 언론과 교육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이와 함께 대구지역 진학 희망자 점수대별 누적인원, 각 대학·학과의 최근 3년간 합격선, 대구 응시자의 타 지역 유출 및 대구 유입 인원, 표준내신등급표, 전년도 성적과의 비교 조견표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자료들이 함께 제작, 배포돼 고교들의 진학 지도에 큰 도움을 줬다.

이후 수차례 입시제도가 바뀌는 가운데서도 발빠르게 대응해 다양한 진학지도 자료를 제작, 공유함으로써 전국적으로 모범적인 단체로 발돋움했다. 활동 범위도 점차 확장해 대구시 교육청, 언론사 등과 함께 대학입시 설명회를 매년 여러 차례 개최하고 수십 권의 자료집을 펴냈다. 최근에는 정시모집 지원 기준표 제작 외에도 수시 지원 대비 모의수능 분석, 논·구술고사 분석 등 1년 내내 수험생들의 진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