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화계는 풍성했다.
2006년 새해 벽두부터 '왕의 남자'가 등장, 1천2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한동안 깨질 것 같지 않던 이 흥행 기록은 불과 7개월 후 나타난 '괴물'이 '왕의 남자' 흥행을 누르고 1천302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관객들은 이제 스타 이름만을 보고 영화표를 예매하지 않게 됐고 다양한 장르와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중시하게 됐다. 2006년 영화계를 결산해보자.
◆ 새로운 장르의 등장, 그리고 성공
올 한해,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두 편이나 등장했다. '왕의 남자'와 '괴물'.
처음 영화가 제작될 당시 이 두 영화가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소위 잘 나가는 스타 배우 한명 없었으니 말이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영화계의 흥행참패의 징크스가 있는 사극 장르를 선택한데다 그 어느 한 명 눈에 띄는 스타 배우가 없었다. 하지만 동성애 등 다양한 코드를 간직한 '왕의 남자'는 각종 신드롬을 몰고 오면서 상영 112일만에 1천230만명을 모으며 당시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의 투자자를 모으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고백했을 만큼 눈에 띄는 영화는 아니었다. 게다가 '괴물'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괴수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치부됐던 괴수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스타 배우 역시 없었다. 하지만 '괴물'은 돌풍을 일으키며 105일동안 1천302만명을 불러모아 역대 영화순위 1위에 랭크됐다.
지난 7월 27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국의 역대 흥행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괴물이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기대를 모았던 '괴물'은 개봉 당일 최다 관객, 일일 최다 관객, 최단기간 200만 돌파 등 새로운 기록들을 양산해냈다.
이로써 역대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에다 올해 상영된 '왕의 남자'와 '괴물'이 추가됐다.
이처럼 사극, 괴수영화 등 새로운 장르가 각광받으면서 이제 한국영화에는 새로운 장르 개척이 부쩍 늘어났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는 화투와 노름꾼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마치 할리우드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구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한국형 도박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삼거리 극장', '구미호 가족' 은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에 새롭게 도전했지만 눈에 띄는 반응은 얻지 못한 케이스. 하지만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관객들은 이제 한국적 소재와 배경을 버무린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 조역배우의 재발견, 중견배우의 재발견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조연들이 올해 대거 주연으로 발돋움했다.
김수로는 '흡혈형사 나도열'에 이어 주연으로 등극하고 뒤이어 '잔혹한 출근'으로 주연으로 열연했다. 그의 코믹한 이미지를 영화마다 재생산했을 뿐이지만 오랜 조연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의의가 있다.
백윤식은 올해 '싸움의 기술',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이문식 역시 '플라이 대디', '구타유발자들' 등에서 열연했다.
영화 '구세주'는 감초 연기로 사랑받아왔던 조연급 최성국과 신이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한편 중견 배우들도 대거 주연급으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관객들의 지지 속에 상영되고 있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는 TV 시트콤의 주연들이 그대로 영화로 옮겨왔다. 이 영화에서 김영옥(69), 서승현(63), 김혜옥(46), 임현식(61)이 함께 주연을 맡았다.
현재 제작 중인 '마파도 2'는 여운계(66), 김을동(61), 김형자(56)이 주연을 맡았으며 9월 개봉작 '무도리' 도 최주봉(61), 박인환(61) 등 주인공을 중견배우들이 맡아 호연을 펼쳤다.
이처럼 젊은 남녀 청춘 스타들이 주연이라는 공식을 깬 영화계는 풍부하고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으로 한층 풍요로워졌다.
◆ 이름값만으론 안된다-똑똑해진 관객
한편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한국적 소재나 감동 없이 단순히 외화의 복제품으로 승부를 걸었던 영화들은 올 한해 참패를 면할 수 없었다. 장르적 독창성이 부족한 영화들은 스타시스템과 배급망을 앞세운 대작이라 할지라도 환영받지 못한 것.
'태풍'이나 '야수'는 수십억원을 쏟아붓고 최고 스타들을 기용한 블록버스터였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고현정의 영화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해변의 여인'은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며 흥행에 실패한 것을 비롯해 최지우, 조한선의 '연리지', 정우성, 전지현의 '데이지' 도 관객동원이 기대에 못미쳤다. 올해 최고 스타 이준기를 내세운 '플라이 대디' 도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으면 관객은 스타의 얼굴을 보기 위해 티켓을 끊지 않는다'는 사례로 평가된다.
고소영이 4년만에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한 '아파트' 역시 100만 관객도 불러들이지 못했고 이병헌, 수애의 '그 해 여름'도 소리소문없이 간판을 내렸다.
특히 지난해 말 개봉한 블록버스터 '태풍'은 대한민국 최고 흥행배우로 꼽히는 장동건과 이정재, 이미연이 주연을 맡았으며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영화계 안팎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전국 420만명 동원에 그쳤다.
이같은 결과는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스타 배우의 이름에 휘둘리지 않고 연기력과 작품성, 내용 등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이다.
◆ 특색있는 작은 영화의 선전
11월 개봉한 퀴어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저예산 영화로는 유례없는 전국 4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퀴어 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로맨틱 코미디에 엽기 잔혹극과 시니컬한 블랙 유머를 덧입힌 '달콤 살벌한 연인' 역시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9월 개봉한 이창재 감독의 '사이에서'는 무녀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2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관람했으며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의 악전고투를 담아낸 '비상'도 2만명이 넘게 보는 호성적을 거뒀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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