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 이전지 선정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우리 사회 갈등조정 기능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이 주민 투표로 경주에 유치됐을 때 국민들은 19년 동안 표류해온 국책사업이 이제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한수원 본사 이전지 선정을 놓고 한수원과 경주시는 물론 산업자원부 등 중앙정부도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정 후의 주민 반발과 후유증을 우려해 서로에게 책임을 미뤄 결국 갈등만 키운 것이다.
◆갈등, 왜 커졌나?
한수원은 방폐장유치지역 지원특별법 제17조와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18조에 따라 본사 이전지 선정 등에 관한 계획을 2007년 1월 1일까지 확정하고, 2010년 10월 말까지 이전을 완료해야 한다.
그동안 한수원은 부지 결정을 몇차례 미뤄왔다. 올해 초에는 5·31 지방선거에서 특정 후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8월 말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동경주 주민들의 양북면 이전 요구에다 경주시와 협의 부진으로 11월 말까지로 연기했고, 이마저 여의치 않자 또다시 이 달로 미뤄졌다. 이제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는 시점에 몰린 것이다.
이처럼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양북 이전을 요구하는 동경주(양북·양남·감포)주민들과 뒤늦게 도심권으로의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 간 첨예한 대립으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수원 본사의 양북면 이전을 주장하는 방폐장 인근 동경주 주민들은 "당초 약속을 어길 경우 방폐장 유치 백지화와 신월성 1·2호기 건설 저지 등 강경 투쟁을 벌이겠다."고 했다. 이에 맞서 도심권 주민들도 "경주 전체가 균형발전할 수 있는 곳에 한수원이 들어서지 않을 경우 대규모 집회 등 단체행동은 물론 특단의 결정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같은 주민 간 대립과 갈등은 이미 예고됐던 것이다. 하지만 한수원이나 경주시는 물론 경주시의회와 중앙정부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에게 결정권을 미루고 '시간이 가면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는 식의 안일한 대처가 결국은 화를 키워 온 셈이다.
◆조정 기회, 왜 놓쳤나?
한수원과 경주시는 한수원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몇 차례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양측이 상대를 탓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경주시장이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에 대해 약속을 할 입장과 위치에 있지도 않으면서도 약속을 하는 바람에 이 문제가 꼬였다."고 볼멘 소리다. 또 "시가 선정 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동경주 지역을 추천했다가 최종에는 도심권을 추천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행정을 펴고 있어 갈피를 못잡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한수원이 경주 도심과 거리가 먼 동경주 쪽에 가지 않기 위해 노조의 반대를 내세웠다"면서 "결정권이 한수원에 있으면서도 선정 후의 후유증을 우려해 '선정 권한이 없다.'며 시로 책임을 넘기려고 한다."고 불쾌해 했다.
시와 한수원 합의로 구성된 민간기구도 역할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측은 지난 9월 '한수원 이전에 따른 민관공동협의회'를 구성해 한수원 이전 문제를 자문하기로 했었다. 이 협의회가 일정 기능을 할 경우 동경주와 도심권 주민들의 이견을 좁히고 타협점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협의회 출범 당시부터 위원 선정에 대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일부 위원들이 불참해 '반쪽짜리' 협의회로 전락, 역할을 수행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중앙정부도 19년 동안 질질 끌어왔던 국책사업을 해결했다고 자랑하기에 바빴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수원과 경주시가 잘 협의해 무리없이 해결하라는 식이다. 보다 적극적인 중재가 아쉽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한 대목이다.
경주·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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