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힘은 청정수행 풍토이다. 불교계의 청정수행풍토의 핵심은 선방이다. 전국의 수많은 교구 본사를 포함한 사찰 가운데 선방을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 선방 가운데서도 동화사 금당선원은 한국불교의 선맥을 이어온 역대 선사들을 배출해낸 선수행의 중심지이다.
1900년, 동화사 금당선원은 경허 스님이 수행납자들을 받아들이면서 면모를 새롭게 했고, 1920년대에는 동광 남옹 고암 인곡스님 등이 안거 정진했다. 성철스님 역시 29세에 금당선원에서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을 읊었다.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흘러/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내리도다/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서니/청산은 예로대 흰구름속에 섰네"
정화시절, 비구 대처 분규 와중에 설총의 45대손으로 한의사였던 설석우 스님은 1955년 전국 승려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초대 종정에 추대됐고, 1956년 동화사에 주석하면서 금당선원을 보림했다. 석우 스님은 세상인연이 다하자 "건곤을 모아 주머니에 담아 밖에 던져버리고/해와 달을 지팡이에 끼어 소매 주머니에 감추고/한 종소리가 나니 구름이 흩어지네/1만 청산이 석양같구나"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열반했다.
석우 스님 입적 후 효봉 스님(전직 판사)이 1958년 동안거부터 1959년까지 동화사 금당선원에 머물렀고, 통합 종단 초대 종정에 취임한 뒤, 1963년부터 1966년 5월까지 금당선원 조실방인 미소실에 주석했다. 이때 구산 스님도 동화사 주지 소임을 보면서 금당선원에서 정진했다.
이후 혜월 운봉 향곡 혜림 관응 범룡 서옹 스님에 이어 1994년부터 지금까지 진제 스님이 조실로 법맥을 잇는 동화사 금당선원은 오늘날 물질문명의 막다른 입장에서 정신적 바탕을 제대로 세워서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바로 그곳이다. 1994년 무공스님이 재개원한 이래로 금당선원에는 매년 하안거 동안거를 통해 60~70명이 간화선을 닦았으며, 지금도 28명의 결제중이다. 금당선원 내 극락전 앞뜰에 동서로 서있는 3층석탑은 보물 248호이며, 불사리 7과가 봉안돼있다.
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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