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스타토크] 배우 김병춘

배우 김병춘. 그는 팬들이 내미는 싸인 종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배우다. 벌써 무대경력 27년째. 영화 바람난 가족과 천군,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 십여편의 영화를 찍었고,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패션70'에서는 개성강한 재단사(방육성)로 출연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아직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학로의 허름한 술집 안. 영화 촬영중이라 하얗게 탈색시킨 머리를 감추기 위해 털모자를 푹 눌러쓴 김병춘씨와 만났다. 그는 늘 김병춘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연기스타일로 시선을 잡아끄는 배우다. 그래서인지 그를 잘 아는 연극연출자들이나 감독들은 그를 무척이나 아낀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식지 않은 강렬함을 담아내기 때문이리라.

일단 그가 영화 '바람의 전설'에서 보여줬던 춤 실력부터 물어봤다. 배우 이성재가 춤의 지존인 박노인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그는 구부러진 허리를 곧게 펴고는 두다리를 쫙쫙 뻗으며 멋드러진 춤을 보여줬었다.

"극중에서 묘사된 만큼 잘 추는 솜씨는 아니지만 영화를 찍기 위해 수개월 동안 춤을 배우러 다녔어. 다행히 연극을 하면서 다져진 유연함이 있어서 남들보다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는 자신을 '콤플렉스가 많은 배우'라고 소개했다. 배우답지 않은 외모 때문이란다.

"대학을 들어갔는데 다들 나보다 잘 생기도 잘난 것 같더라고. 학과 특성상 외모가 중요하잖아. 그런데 나는 목소리도 시원찮은데다 몸매도 퉁퉁하고…. 굉장한 콤플렉스를 느꼈어." 이 말부터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물 한잔을 시원하게 비운다.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었지. 콤플렉스를 어찌 할 수 없다면 장점으로 바꿔보자 싶었어. 일단 몸에 딱 붙는 무용복 타이즈부터 샀지. 몸이 확 드러나잖아. 애들은 원숭이 보듯 낄낄대고 웃고 난리였지. 그래도 나는 신경 뚝 끊고, 그때부터 '연습실이 집이다'고 독하게 마음먹고 한 2년쯤 버텼어. 그러고나니까 배우로서 균형감이 쌓이기 시작하더라고."

그는 극단 목화에서 셰익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완전 한국화한 공연 중에 있었던 일화 한 토막도 소개했다.

"작품에서 캐필릿가의 아들 머큐서 역을 맡았는데 칼에 맞고서 쓰러지는 장면이 있었어. 근데 느낌이 안오는거야. 그러던 중 독일 공연을 갔는데 연습 끝내고 욕실에서 '쿵'하고 넘어졌어. 정신을 차리는 과정에서 '와우, 이 느낌이다' 싶었지. 쓰러져가면서 죽음으로 치닫는 현기증 같은 기분을 쏟아내는 2분가량 독백인데 덕분에 정말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었지. 독일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았고." 당시 독일 브레멘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극장에서 공연된 그의 공연은 연일 매진을 기록했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배우 김병춘의 이름이 열혈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부족할 것을 발견하게 만들잖아. 영화나 연극이든 어떤 경계를 두고 싶지는 않아. 연극도 많이 하고 싶고. 배우로서의 고집은 어떤 장르의 집착이 아니라 배우로서 선 위치에서 무엇을 담아서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

유명한 배우도 아닌데 뭘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느냐며 손사레를 치며 수줍어하던 그. 하지만 유명한 스타는 아니지만 그를 닮은 후배들이 더 많아 으면 좋겠다싶었다. 그래야 좋은 배우들이 더 많이 나와 줄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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