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 이전지를 두고 빚어졌던 격심한 갈등과 대립을 '걱정 반, 시샘 반'으로 바라보는 곳이 있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찬반 주민투표에서 탈락한 포항시와 영덕군이다.
지난해 11월 방폐장 유치전이 불붙었을 당시 산업자원부를 포함한 정부 각 부처는 탈락지역에 대해서도 배려가 있을 것이라는 공약을 잇따라 쏟아내었다.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도 나섰다. 그러나 당초 약속에 대한 실천 움직임은 주민투표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주민투표 후 현안사업을 요청하라고 했다. 이에 포항시는 중앙도서관(500억 원), 포항타워건설(1천억 원)등 9개 사업에 1조 5천477억 원을, 영덕군은 오십천 로하스 관광지구개발(750억 원), 예주역사공원 조성(100억 원), 신재생에너지단지 조성 등 12개 사업에 1천675억 원을 건의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돌아온 답은 전혀 없다. 그동안 포항시장과 영덕군수 등 관계자들이 수없이 찾아다니며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으나 아무 것도 챙기지 못했다.
이제는 탈락지역 배려를 공언했던 중앙부처 공무원들 대다수가 자리를 옮겨버려 상경하더라도 상의할 곳조차 제대로 없는 상태다.
정부가 관심을 기울였던 적은 있다. 지난 1월 각 부처 1급 고위직들이 모여 포항시와 영덕군, 군산시 등 탈락지역에 대한 지원을 논의했던 것. 그러나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정지역에 대한 지원을 확정하면 현역 시장·군수에 대한 기부행위가 돼 선거법 저촉 우려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자 그냥 덮혔다. 이후 선거가 끝난 6월 추가 논의가 있었으나 2007년 예산에는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포항시와 영덕군, 군산시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자 산자부 등은 2008년에 일정액의 예산 반영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포항 경우 500억 원 규모의 동북아 테크노센터 건립 1건이며, 영덕은 영덕읍 풍력발전단지 내 테마파크 조성 등 3건 120억 원 정도가 지원 사업으로 분류됐다는 것.
그러나 이는 당초 약속한 수천억 원 지원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마저도 실행에 옮겨질지는 불투명하다. 국책사업 탈락지역에 지원을 해 줄 경우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포항시와 영덕군 관계자들은 "정부가 주민투표 도입 당시 쓸개라도 빼줄 듯 해놓고 막상 사업 지원을 건의하자 딴소리를 하며 모른 척한다."면서 "이는 정부가 주민들을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점락 영덕군 지역경제과장은 "방폐장 유치를 둘러싸고 갈라진 민심의 후유증이 아직도 심각한데 정부는 당초 약속한 최소한의 지원사업도 않고 있다."면서 "영덕은 방폐장으로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 투성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덕에서는 아직도 방폐장 후유증으로 찬반 단체가 공방전을 벌이는데다 관련 투서 등으로 경찰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등 1년 넘게 지역이 갈라져 아픔을 겪고 있다.
경북 동해안 지역에 방폐장 유치 불을 가장 먼저 붙인 포항시도 "온갖 것을 다 들어줄 것 같던 정부가 이런 식으로 외면한다면 앞으로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민원성 국책사업 유치에 나서겠느냐?"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지난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산자부와 과학기술부 등 방폐장 관련 중앙부서 공무원들은 주민투표 후 참여정부의 최대 치적을 일궈냈다는 격려 속에 대거 훈·포장을 수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승진을 포함한 영전 '잔치'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포항·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영덕·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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