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수성동 동일초교는 모두 3개의 아파트 공사장에 빙 둘러싸여 있다. 왕복 6차로(35m)를 사이에 둔 두 공사장에선 올 초부터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고, 열흘 전 학교 담장과 불과 4m 거리를 두고 아파트 재건축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돌 깨는 소리와 공사 차량 소음이 하루 종일 학교를 떠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홍정자 교장은 "소음때문에 창문을 열어 환기시킬수도 없고, 호흡기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많아 보건실 침대가 늘 모자랄 정도"라며 "큰 길과 맞물려 있는 한 공사장 출입구때문에 이곳을 통과하는 700여 학생이 통학로 불편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 10월부터 서명 운동에 들어가 지난 21일 공식 출범한 비대위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의 학습권을 제발 돌려달라."며 "30일엔 학부모들이 아파트 공사장을 직접 돌며 소음과 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재개발, 재건축 열풍으로 시내 학교 주변마다 아파트 신축이 잇따르면서 공사장에 갇힌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그러나 관련 규제기준이 없어 속수무책이다.
대구 교육청이 안민석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진행 또는 예정의 대구 재건축, 재개발 아파트 공사장과 200m 이내에 위치한 학교는 모두 13곳이며, 이 가운데 10곳이 초등학교로 나타났다. 안 의원은 "아파트 공사장의 소음과 분진으로 인한 아이들의 학습권 피해가 심각하다."며 "교육청이 직접 나서 대책을 세우라."고 지적했다.
교육청 협의대상이 아닌 300가구 미만이나 아직 협의를 거치지 않은 아파트 공사장까지 더하면 '피해' 학교는 훨씬 많다. 아파트 개발 바람이 가장 거센 수성구청에 따르면 진행 또는 예정의 수성구 학교 주변 100m 이내 공사장만 13곳이다. 더 큰 문제는 현행 생활소음법엔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호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 일반 아파트 공사장의 소음 규제 기준은 70db(데시벨)로 정해져 있고, 학교 또한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성구 동일초교가 지난 7월 측정한 소음치는 운동장 62db, 창문 연 교실 56db 수준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고시한 학교 소음 기준(55db)을 웃돌고 있지만 단지 고시 기준에 불과해 행정 조치가 불가능하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일반 아파트 소음 규제 기준을 위반하면 방음시설 설치 명령과 불이행시 공사중지가 이어지지만 현행법상 학교에 더 엄격한 규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며 "아파트 건설사와 해당 학교가 개별 협의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개최한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청문회'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학습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대책이 논의됐다. 재개발때 학교를 재배치, 재건축하는 계획도 함께 고려하거나 자치단체장이 아파트 사업 승인에 앞서 시·도 교육감과 학습권 보장을 위한 실무지침서를 작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통학로 확보와 소음, 분진 최소화를 위한 표준 지침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대구 시내 한 학교장은 "교육청과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대책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런 사이 재건축, 재개발 공사현장 주변에 위치해 학습권을 침해받는 학생들만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 @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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