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은 음식은 입에 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입에 단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가 되지 않을까? 최근 악명을 떨치고 있는 트랜스지방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부드럽고, 고소하며, 바삭바삭한 등 입에 착 달라붙는 음식 대부분이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높기 때문. 많이 섭취하면 심혈관 질환, 당뇨병,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트랜스지방. 당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공포스런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알게 모르게 많이 먹는 트랜스지방.
바쁜 직장생활 탓에 패스트푸드를 즐겨먹는 직장인 채모(32·대구 북구 대현동) 씨. 29일 점심에 그는 도넛 2개와 햄버거 1개, 감자튀김 1봉지를 먹었다. 튀긴 음식을 워낙 좋아해 저녁은 치킨너깃 9조각과 탄산음료로 때웠다. 밤에도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야식으로 과자 1봉지를 해치웠다.
채 씨가 이날 하루 동안 먹은 트랜스지방은 20.8g.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성인 1인당 하루 섭취 제한량(2.2g)을 무려 9배나 초과했다. 채씨가 먹은 점심 한끼만의 트랜스 지방도 14.4g으로 WHO 제한량을 6배나 넘었다.
성인들은 물론 특히 청소년, 어린이들도 트랜스지방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트랜스지방은 바삭하고 고소한 맛의 비결이어서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2005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국내 유통 중인 가공식품을 분석한 결과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즐겨먹는 식품들에서 트랜스지방이 대거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린이들이 생일파티 때 많이 먹는 패스트푸드와 과자, 빵 등의 트랜스지방 함량이 높아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는 미국 경우 트랜스지방 섭취량이 성인 1인당 1일 평균 4∼8g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식생활이 급속하게 서구화되면서 하루 평균 트랜스지방 섭취량이 2.6g으로 WHO 제한량을 크게 웃돌고 있다.
▲불안에 떠는 주부들.
가정에서 먹을 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주부들은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트랜스지방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트랜스지방이 들어있지 않은 메뉴로 아이들의 생일상을 직접 차려주거나 과자나 빵 대신 과일이나 떡으로 간식을 바꾸는 등 식탁에서 트랜스지방을 추방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지고 있다.
김정은(35·대구 수성구 만촌동) 씨 경우 지난 주 아이의 생일상을 직접 만들어 차려줬다. 지금까진 피자나, 햄버거, 감자칩, 치킨 위주로 생일상을 차려왔지만 트랜스지방 유해성을 들은 뒤부터는 직접 만들어 먹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용숙(60·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올 겨울 방학때 손자들이 찾아와도 무턱대고 슈퍼마켓에 데리고 가 과자를 고르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트랜스지방이 들어있는 과자가 성장기 아이들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간식을 감자나 고구마 등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간식을 사먹이기보다는 직접 만들어주고, 빵이나 과자 대신 떡이나 친환경 농산물 등으로 대신하는 주부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의 적, 트랜스 지방.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에 따르면 혈중 콜레스테롤에 관한 한 트랜스지방의 해악이 포화 지방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고혈압과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 각종 혈관질환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또 미국 하버드의대가 1999년에 내놓은 '트랜스지방산과 관상동맥질환' 보고서에 의하면 트랜스지방 대신 불포화지방을 섭취한다면 미국에서 연간 3만~10만 명의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임산부의 트랜스지방 섭취는 태아의 필수지방산 대사에 영향을 미쳐 태아의 성장을 저해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미자 교수(계명대 식품영영학과)는 "2005년부터 미국, 덴마크,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트랜스지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도 트랜스지방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마가린, 쇼트닝의 섭취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우리나라도 서구 선진국들이 트랜스지방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식품에 트랜스지방 함량을 표시하도록 관련 업계에 권고하고, 정부는 관련 법규에 표시의무화를 규정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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