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엔 나도 뮤지션" 직장인 밴드들
대구시 남구 봉덕동의 한 음악연습실. 매일 저녁이면 7~8명의 뮤지션들이 두드려대는 드럼과 전자악기소리로 20평 남짓한 공간이 터져나간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다니는 김일호씨는 매주 수요일 퇴근후 곧바로 이곳으로 출근한다. 그는 '칼퇴근밴드'의 기타리스트다. 기타를 잡고 있으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직장인밴드' 바람이 불고 있다. 사무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취미삼아 산을 타는 것처럼 음악적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음악밴드를 조직, 정기적으로 연습하고 공연을 하는 '직장인밴드'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대구에만 10여개 이상이 있다. 'Old Pops'처럼 레스토랑을 차려, 공연을 하는 프로밴드도 생겼다. 두산동 레스토랑에서 공연하는 'Old Pops'는 벌써 4년이나 된 장수밴드다. 'GG주부밴드' 등과 더불어 대구FC의 문화서포터스로 선정돼 내년부터는 문화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Jade'와 'The Sky', '3Pieces', '칼퇴근밴드' 등은 대구직장인밴드연합을 결성, 정기적인 합동공연을 갖기도 한다. 이들은 지난 23일 북구의 한 카페에서 송년모임을 갖고 그동안 갈고닦은 연주실력을 겨뤄보기도 했다. '애플밴드'와 '열린음악동호회' 등도 유명하다.
주부밴드인 GG와 달리 직장인밴드 활동을 하는 동회회원의 상당수는 '스쿨밴드' 경력이 있다. '위대한 탄생'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밴드활동을 한 직장인도 있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직장인밴드인 Jade의 김창원 씨는 중학교 때부터 스쿨밴드 활동을 해왔다. 문선대로 입대할 정도였지만 제대후 기타를 손에서 놓았다.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던 그는 2002년 다시 음악이 하고 싶어 인터넷에서 음악적 취향이 같은 사람을 모았다. Jade가 탄생했다.
칼퇴근밴드의 멤버는 7~8명. 중소기업진흥공단 공무원에서부터 새마을금고연합회 직원, 자영업자,중소기업 직원 등 직업이 다양하다. 플룻동호회인 '플룻사랑'의 김범수씨는 의사다. 나이도 들쭉날쭉이다. 그러나 직장인밴드결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악적 취향이다. 재즈와 블루스, 팝, 혹은 하드락, 헤비메탈 등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라야 한다. 이를테면 '스카이(The Sky)'가 헤비메탈을 추구한다면 Jade는 재즈와 블루스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음악 사랑 남녀 있나요" 주부밴드 GG
'대단한 여자들이 왔다.'
Great Girls라는 이름 그대로 6명의 파워걸들이 쏟아내는 다이나믹한 사운드가 실내를 가득 채우며 귀청을 때렸다.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지난 27일 오후 'GG주부밴드'의 올해 마지막 공연이 열린 대구시 달서구 용산2동사무소 2층 강당. 이곳 김덕술 동장의 퇴임식을 빛내기 위한 자선공연무대다. 이들 모두가 주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실력과 가창력을 갖췄다. 대구경북에서는 최초의 주부밴드다.
30, 40대 주부라지만 중고교나 대학시절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거나 음악과 좀 놀았던 소녀들이 아니었을까? 천만에다. GG밴드를 이끌고 있는 이복란 단장은 "절대로 그렇지않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 단장은 "음악을 좋아하고 '끼'는 있었지만 학교다닐 때는 그런 거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올갠을 전공한 이혜경 씨 외에는 모두가 아마추어다.
그러나 이제 GG밴드는 아마추어밴드가 아니다. 12월 한달만 해도 10여차례 공연을 했다. 2일 결식아동돕기 자선공연, 6일 불우이웃돕기 송년자선음악회, 17일 청소년 어울림 한마당 송년음악회 등. 엄마노릇, 아내노릇 제대로 하기가 힘들 정도로 정신없이 한달을 보냈다. 오죽했으면 다음카페에 "노래도 해야하고 아이들과 전쟁도 치러야하고 살림도 해야하고 공연히 마음만 바쁘다."는 하소연을 올렸을까.
인기가 치솟으면서 내년에는 더 바빠지게 됐다. 대구시와 대구FC의 문화서포터스로 활동하면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게됐고 달서구 홍보대사로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1월 2기 단원들을 보충, 15명으로 식구를 늘렸다. 2003년 11월, 5명으로 출발했을 때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라고 할 만하다. 처음엔 학교 어머니모임과 가요교실을 함께 하던 주부들 5명이 모였다. 달구벌가요제 출연이 계기가 됐다. 기타 등 악기를 배우고 싶은 순수한 동호회로 출발했다. 악기와 장비는 남편들이 사댔다. 꽃집을 하는 남편에게 꽃집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로 설득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GG밴드'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 단장 뿐이다. 그만큼 밴드를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힘이 들었다. 이 단장은 "남편으로부터 '여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라는 소리를 듣지않기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끌고왔다."고 말했다.
푸른방송의 가수 최원숙 씨의 노래지도와 노찬규 씨의 연주지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GG밴드는 없었을 지 모른다. 하긴 공연 때마다 찬조출연해주는 가수 나진아 씨도 적극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밴드의 최대 지원자는 결국 가족이다. "우리끼리는 노래방도 한 번 못가봤어요. 저녁에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밤에는 공연행사 외에는 아예 만나지 않았어요. 이날 저녁 송년회식이 3년만에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단장은 가정을 중시한다. '보수적인' 대구에서 가족의 힘이 없었다면 주부들이 밴드활동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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