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기들의 성능이 폭발적인 속도로 늘어나면서 사회·산업·문화의 저변을 바꾸고 있다. 그 엄청난 동력에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needs)가 합쳐지면서,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거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상을 5회에 걸쳐 싣는다.
#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
적어도 디지털 기기에서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어 보인다. 프린터와 팩스, 스캐너가 합쳐진 복합기가 이미 오래 전에 나온데 이어, 인터넷이 가능한 냉장고가 주방에 들어왔다. 휴대폰엔 웬만한 디지털 카메라에 견줄만한 손색없는 렌즈가 달리고 있으며, 게임기가 컴퓨터의 영역을, 셋톱박스가 홈 서버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들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복합 기능을 탑재한 디지털 기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듯 최근 가장 많이 화두로 등장한 말이 바로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다. 컨버전스란 여러 기술이나 기능 등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뜻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스마트 폰 역시 디지털 컨버전스 개념이 탑재됐다. 스마트 폰은 개인정보단말기(PDA)로서의 역할은 물론이고 리모콘, 터치스크린을 갖춘 '똑똑한' 휴대전화다. 인터넷 접속, 게임이 가능한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로 변신한 것이다.
# 통신기능 없는 휴대제품, 물럿거라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는 그 자체만으로 시장에서 별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비게이션 기능과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기능을 한 데 묶으면서 시장의 주목을 끌게 됐다.
휴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한 때 차세대 모바일 기기로 각광받은 PDA, 타블렛 등은 이제 관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통신 기능이 없는 휴대 제품에 요즘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심지어는 MP3 플레이어에도 무선랜이 내장된 제품이 나왔다.
일찍이 이승만 대통령은 "뭉쳐야 산다."고 했는데 디지털 융합 시대에도 걸맞는 다의적 뉘앙스를 지닌 말인 듯하다. IT전략연구원의 주진형·황지연 씨는 '컨버전스와 문화산업 트렌드'라는 논문에서 "뭉쳐야 사는(buy) 것은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일 것이고, 뭉쳐야 사는(live) 것은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생산자일 것"이라고 했다.
# 융합이 세상을 바꾼다
소비자의 욕구와 기호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컨버전스에는 사회상의 거대한 물줄기 변화를 읽게 한다.
인터넷을 하면서 TV를 보고 싶다는 소비 심리는 인터넷에 연결된 텔레비전, IP-TV를 등장시켰다. 인터넷 프로토콜 텔레비전(Internet Protocol Television)의 약자인 IP-TV는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해 동영상 컨텐츠와 방송 등의 정보 서비스를 TV로 제공하는 것으로, 국내에도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된다. IP-TV 등장으로 인해 TV 수상기는 '바보상자'라는 오랜 오명을 벗고 정보통신기기로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장석권 한양대 교수(디지털 융합연구원장)는 "디지털 컨버전스가 우리 사회의 큰 관심사로 계속되는 기간은 앞으로 4, 5년 정도가 될 것이지만 그 이후는 더 이상 화제가 될 수 없다. 그 때쯤이면 디지털 컨버전스가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환경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예언처럼 디지털 컨버전스는 제품 기능의 융합 차원을 넘어 산업간 융합, 서비스의 융합으로 빠르게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컨버전스는 기술적 트렌드를 넘어 인간의 삶 전반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컨버전스를 논하면서 '유비쿼터스'(Ubiquitous)를 빼놓을 수 없다. 유비쿼터스란 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을 뜻한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우선적인 목표는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어서 두 개념간에는 공통 분모가 많다.
청취자·시청자로 불리던 정보 소비자들은 네티즌으로 이름을 바꾼데 이어, 디지털 컨버전스 트렌드를 타고 '모티즌' '유비티즌'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시장에는 '빅뱅'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디지털 컨버전스'가 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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