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세기의 추억] ①신작로

우리는 망각에 익숙합니다. 얼마전만 해도 한시라도 떼어놓으면 허전해했고 없으면 반드시 채워넣어야 하는 그런 것들이 수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것이 길(路)일 수 있고 부싯돌, 무명저고리 같은 생필품일 수 있고 나루터, 시장터, 철도역 등의 특정 장소 일 수도 있습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도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그것을 내버리거나 장농속에 처박아둘 뿐 입니다. 잊혀지거나 사라지고 있는 그런 것들을 찾고 모으고 기록하기 위해 20세기로 여행을 떠납니다.

'신작로(新作路·일제시대부터 사용된 말로 넓게 새로 낸 길을 뜻함)'를 아는가. 먼지 풀풀 날리는 자갈길을 따라 버스가 지나가고, 그 뒤를 아이들이 달려가고...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이다. 그런 길이 아직도 있을까. 온통 덮어 씌우고 밀어버리는 것을 능사로 아는 시대에 비포장 길이 남아 있을까. 하루종일 차 10대가 채 지나가지 않는 산골짝에도 널직한 도로를 닦는게 우리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낙후되고 뒤처졌다는 경북 북부지방부터 뒤져봤다. 문경에서 시작해 영주, 상주, 안동, 예천... 그렇게 어렵지 않게 3곳을 찾아냈다. 문경새재, 하늘재, 안동 병산서원 진입로 등이다. 모두 다 잘알려진 관광지였다.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비포장 도로를 찾는 여정속에서 '길'의 생명력을 봤다. 길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길은 생물인가?=점촌시에서 국도 3호선을 따라 꼬불꼬불 고갯길을 오르면 이화령(529m)이다. 전망대에 서니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저멀리 널직한 충청도(괴산군)땅이 아득하게 보인다.

잘 지어놓은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나오니 그 넓은 주차장에는 달랑 취재팀이 타고 온 차량 한대 뿐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 흔하디 흔한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다. 휴게소 주인은 10년전만 해도 고갯길에 오가는 차량이 꼬리를 물었는데 이제는 데이트족의 차 밖에 볼 수 없다고 한숨지었다.

그러고보니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고갯길 아래로 1998년부터 고개를 뚫고 지나가는 새 국도와 2004년 완공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길게 쭉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1925년 일제에 의해 신작로가 뚫리면서 문경새재 옛길을 밀어냈던 이화령 도로가 이제는 터널에 밀려 예전의 한적한 길로 되돌아 간 것이다. 길 만큼 흥망성쇠가 뚜렷한 것도 없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시 쇠퇴하는 존재였다.

저수령(850m)고갯길의 운명도 비슷했다. 예천군 상리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길이다. 군데군데 눈덮인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 고갯마루로 올라가는데 차로 15분 가까이 걸렸다.

이 도로가 개설된 것은 1994년(지방도 927호)인데 그전만 해도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오솔길 밖에 없었다. 경사가 급하고 험해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고 해 저수령(低首嶺)이라 불렸을 정도이니 오르내리는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짐작된다. 엄준철(83·상리면 용두리)할아버지는 "30년전만 해도 새벽 첫닭 울때 집에서 나와 산길 60리를 걸어 단양장을 보러 다녔다"며 "막걸리 한잔 걸치고 늦은밤 산길을 걸어오면 아낙들이 관솔불을 들고 마중나왔다"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저수령 고갯길도 포장만 됐을뿐, 지나는 차량의 모습은 볼 수 없다. 가끔 보이는 등산객의 차가 전부다. 단양으로 가려면 2001년말 개통된 중앙고속도로를 타면 되는데 굳이 산길로 어렵게 운전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10년이 채 되지않아 효용가치를 잃는걸 보면 '길은 생물'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오솔길은 신작로로 대체되고 신작로가 포장되면 곧바로 고속도로에게 밀려난다. 인간의 생노병사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남아있는 신작로=비포장 길이 그대로 있는 문경새재, 하늘재, 병산서원를 찾으니 관리자들은 저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흙길'이라고 자랑했다. 틀린 듯 하지만 모두 맞는 말이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서울로 올라가던 옛길이라는 점에서, 하늘재는 도로를 낼 곳인데도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병산서원은 문화재 보호라는 점에서 사연이 다 달랐다.

문경새재에 도로가 나지 않은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문이다. 젊은 시절 문경초교 교사를 했던 박 전대통령은 70년대 후반 이곳에 왔다가 관문을 넘어가는 트럭을 보고는 차량출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당시 새마을운동으로 한창 도로를 내던 시절이었지만 대통령의 한마디에 흙길은 보존될 수 있었다. 도립공원 측은 2003년부터 웰빙바람에 힘입어 '맨발로 황토길 걷기 코스'를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 관리담당 권택우(45)씨는 "6.5km에 이르는 길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매년 15t트럭 50대 분량의 마사토를 뿌리고 있다."며 "포장하면 관리하기 쉽겠지만 황토길은 새재의 가장 귀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하늘재는 시원한 바람길이 열려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하는 이 고갯길은 하늘과 맞닿아있는 듯 해 명명됐다지만 실제로는 그리 높지 않다. 525m이다.

지난 2000년 문경시가 고갯길을 따라 도로를 놓았지만 고갯마루에서 충주 경계부터는 비포장이다. 그곳의 관리주체인 월악산국립공원 측이 도로개설을 아예 고려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원 관계자는 "오히려 공원안에 다른 곳의 포장을 벗겨내야 할 판에 무슨 포장이냐"며 반문했다. 그러나 문경시 산불감시인 홍일섭(70)씨는 "문경 사람들은 수안보로 직통하는 이 도로를 원하지만 국립공원 측의 태도가 워낙 완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 중간에 서서 양쪽을 돌아보면 포장과 비포장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기계와 인간의 차원이라고나 할까. 충주 경계부터 오솔길이 1.2km정도 이어져 걷는 맛을 더해준다.

안동 병산서원 진입로도 지금까지 여러차례 포장될 위기에 처했다. 70년대부터 포장계획이 세워지고 예산까지 배정받기도 했지만 문화재관리위원회 등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됐다.

이제는 1.2km의 비포장 진입로가 귀중한 문화재의 훼손을 막아주고 있다는 공감대가 일정부분 형성돼 있다. 안동 하회마을에 1년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바로 옆에 있는 병산서원에는 10만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것도 서원의 누각과 주춧돌 등 한국의 건축미를 보러오는 애호가가 대부분이다.

포장될 위기에서 구한 것은 90년대 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이다. "자갈길이기에 병산서원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라고 쓴 유홍준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있는 한 포장 얘기는 아예 나오지 않을게 분명하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제자(題字)를 쓴 변미영씨는 1963년생으로 15회의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화가다. 대구한의대 초빙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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