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마흔다섯의 봄, 불혹(不惑)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을 향하는 길 위에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랬다. 하늘의 뜻은 아직 이르지 않아 아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세상의 온갖 일에 미혹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왕자가 불쑥 찾아와 말했다.
"히말라야가 보고 싶어."
"쾅쾅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물을 보고 싶어, 그리고 언제나 눈꽃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들도…."
2년 전 티베트에서 네팔로 들어가는 길에 넘었던 히말라야가 불현듯 떠올랐다. 금빛 노을에 빛나던 설산들과 깊은 속살을 드러낸 골짜기, 그 아스라한 절벽 끝에 매달려 있던 집들과 걸망 가득히 옥수수를 지고 하염없이 길을 걷던 사람들….
어린 왕자와 히말라야는 봄빛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그렇게 5월마저 막바지로 치닫던 어느 날, 어린 왕자는 다시 말했다.
"너는 누구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야."
이 못난 의식을 지우기 위해서는 떠나야만 했다. 무작정 배낭 한 귀퉁이에 '어린 왕자'를 넣은 히말라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델리를 떠난 버스는 열네 시간을 달려서야 맥클로드 건지(McLeod Ganj)에 닿는다. 우기에 젖은 히말라야를 잠깐 피하기 위해 찾은 곳이지만 2년 전 티베트 여행의 연장이기도 하다. 맥클로드 건지는 티베트 망명정부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더럼살라(Dharamsala)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지만 실제로 티베트 망명정부와 14대 달라이 라마의 거처가 있는 곳이다. 1959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캇쏘(Tenzin Cyatso)가 중국의 폭압을 피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망명정부를 세운 이후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영적인 곳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값이 싸고 전망이 좋은 숙소는 달라이 라마의 거처를 향해 마주하고 있고 이미 만원이다. 겨우 방을 구하고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달라이 라마의 거처와 티베트 라싸의 조캉 사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쑤글라캉 콤플렉스(Tsuglagkhang Complex)를 찾아 나선다. 5분 남짓 걷는 길 한쪽에는 노점상과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맞은 편 골짜기 쪽에는 걸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걸인들의 대부분은 장애인이거나 노약자들이지만 한눈에 보아도 인도인들이다. 빌린 땅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티베트인들과 오히려 땅을 빌려주고서 그들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인도인들이었다.
라싸(Lasa·拉薩)의 사원들이 중국의 공안들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는 것과는 달리 쑤글라캉 콤플렉스는 자유롭게 열려 있다. 삼배를 올린 후 입구로 들어가자 11대 판첸 라마인 치에키 니마를 석방하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판첸 라마는 티베트어로 더없이 높은 사람, 고승을 뜻한다. 티베트 환생 신앙의 한 축이자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화신으로 관음보살의 전생활불(轉生活佛)인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우러름을 받아왔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성속(聖俗) 두 권력을 모두 쥔 달라이 라마에 다음가는 부법왕 위치에 있다. 역대 판첸 라마들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때문에 판첸라마가 달라이 라마의 반대세력으로 여겨져 약간의 반목도 있었다.
왼쪽 길을 따라 오르자 중앙회당인 쑤글라캉이다. 법당 앞에는 오체투지를 올리는 사람들과 대리석 바닥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티베트 불교의 특징은 헌신과 자유로움이다. 헌신이야 우리네 불교와 다를 바 없지만 자유로움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싸에서도 보았듯이 승려들도 신자들도 사원의 아무 곳에서나 누워 쉬며, 또한 돈을 나누기도 한다. 엄격한 수행을 강조하는 우리네 절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해서 어떤 이들은 마치 티베트의 불교가 은밀한 세속을 허락하는 밀교인 것처럼 오해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척박한 땅 위에서 제 한 몸 누일 공간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종교가 어찌 헌신을 받을 수 있으랴? 점심시간. 신도들과 여행자들, 그리고 스님들까지 함께 공양을 받는다. 백팔 배를 올리던 동양인 여행자가 신기했던지 빵을 두 개 씩이나 나누어준다. 문득 자신의 그릇에 받은 죽을 여행자에게 권하는 노인의 낯이 익다. 새벽녘에 버스 승강장에서 만났던 걸인이다. 그가 오체투지를 하면서 기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죽음을 앞둔 인도인들이 갠지스 강을 찾아 평온을 얻듯이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환하다.
달라이 라마 거처의 철문은 닫혀 있다. 총알이 들어 있지 않을 것 같은 총을 어깨에 멘 인도 병사가 아무런 격식도 없이 허허로이 앞을 지키고 있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인도정부의 배려(?)가 살갑다. 달라이 라마와 독대를 원하는 사람은 4개월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안내문이 담장에 걸려 있다. 벽안의 외국인들이 그 안내문을 읽고 있다.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달라이 라마이지만 상이 아니더라도 이미 그는 세상의 영적 스승이다.
시크교도로 보이는 인도인 가족이 꼬라(성스러운 곳을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를 하고 있다. 불경이 적힌 마니차(종의 일종)를 돌리며 환하게 웃는 그들을 보며 오늘 날 세상이 낳은 종교적 편견이 얼마나 음모적이며 어리석은 것인지를 다시금 본다.
티베트 청년들에게 직업교육을 시키는 곳인 남결 카페(Namgyal Cafe)에 앉아 엽서를 쓴다. 여행을 할 때마다 늘 되풀이하는 과거로의 회귀다. 이메일의 편리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왠지 텅 빈 영혼의 차가운 유랑 같은 느낌이 싫어 못난 필체를 고집하는 것이다. 짜이(우유에 홍차를 탄 인도 전통 차)를 가득 담은 주전자의 무게가 가벼워질 무렵, 창밖으로 노을이 내려앉는다. 마흔네 번의 노을을 볼 수 있었던 어린 왕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나야 티베트인들이 평화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도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를 그리워하기 때문일까? 창가에 둔 노란 화분에 아련한 파문이 인다.
티베트 전통 식당에서 모모(티베트의 만두)와 툭빠(티베트의 수제비)로 저녁을 먹다가 식당 주인의 여동생인 티베트 처녀를 만났다. 그녀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 2년간 공부를 끝내고 현재 티베트 의학연구소(Tibetan Medical Institue)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얀 전통 의상이 너무 곱기도 하거니와 "이젠 한국말을 많이 잊어버렸다."며 웃는 얼굴에 핀 홍조가 아름답다.
"라싸가 서울 같았어요."
그녀는 작년에 라싸를 다녀오면서 너무 슬펐다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고향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며 호텔이며 매춘을 위한 홍등가까지, 2년 전 여행자가 본 중국의 만행을 자신의 고향에서 받았을 충격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곳도 예전 같지 않아요."
이 영적인 도시에도 성수기면 여행자들이 몰고 온 오토바이의 폭주와 심심찮게 강도, 강간 사건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행여 내가 섰던 자리는 추하지 않았는지, 보잘 것 없는 자본의 잣대를 들이대며 으스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티벳탄이에요."
그렇다. 라싸를 제 아무리 쾌락과 향락의 도시로 만들어간다 할지라도 맥클로드 건지가 제 아무리 자본으로 변질되어 간다 할지라도 티벳탄들은 오늘 이 순간에도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이마와 무릎이 깨지는 고통을 바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 2: 아이들이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마니차는 불경을 새긴 경륜으로 한 바퀴를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사진3: 맥클로드 건지 전경-맥클로드 건지는 해발 1,770m에 위치하기 때문에 언덕을 따라 집들이 형성되어 있다.
사진4: 중앙회당 풍경-법당 앞에서 사람들이 티베트의 전통적인 절 오체투지를 올리고 한편에서는 누워 쉬고 있다. 오체투지는 이마와 손바닥 그리고 양쪽 무릎이 땅에 닿는 부처에게 바치는 가장 겸손한 절 양식이다.
*글쓴이 전태흥은 1962년 부산 출생으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후 학생운동에 따른 제적, 투옥 및 재야단체활동과 택시기사, 농산물 경매인 등을 거쳐 1996년 15년 만에 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국회의원 비서관과 정당간부를 지냈다. 현재는 ㈜미래데이타 대표로 있다.
전태흥은 지난 2004년 16회에 걸쳐 '길 위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16회에 걸쳐 본지에 티베트 여행기를 연재,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 이번 글은 그의 두 번째 구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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