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시즌이 끝났지만 좀처럼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다. 가족과 지인들을 챙기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는 선 감독은 최근 일본 여행을 마치고 귀국, 서울에 머물고 있다. 그를 삼성 구단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인간 선동열
평상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선 감독은 "1년 동안 미뤄왔던 약속들을 하나하나 지키느라 바쁘네요. 대구로 찾아갔어야 하는 건데…."라며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했다.
-가족을 소개해 달라. 아버지, 남편으로서 몇 점을 매길 수 있나.
▷아내(김현미·40)와 1남(민우·18) 1녀(민정·15)를 두고 있다. 가족에겐 당연히 빵점 남편, 빵점 아빠다(웃음).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잘 견뎌주는 아내가 정말 고맙다. 하지만 고맙다고 말해본 적은 없다. 입에서 그 말이 안 나오는 걸 어쩌나(쑥스러운 듯 얼굴이 붉어진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 어떻게 푸나.
▷정규 시즌 중엔 혼자 소주 몇 잔 마시고 잠을 청할 때도 있다. 예전엔 7~8병은 마셨는데 요즘은 1~2병만 마셔도 취한다. 25년간 피던 담배를 지난해 초 끊었는데 참기 힘든 때가 많다.
지난해 팔공산에 오른 적이 있다. 모자와 선글라스까지 썼는데도 등산객들이 알아보고 몰려들어 함께 사진을 찍자더라. 일일이 응해주며 산에 오르자니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결국 한번 간 뒤 포기했다.
-선수 시절부터 호인(好人)으로 알려져 있다.
▷성격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야구계 외에도 아는 사람은 많다. 연예계 쪽에도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 있고. 감독을 하면서는 성격이 보다 신중해진 것 같다. 화가 나도 참아야 할 때가 많다.
-일본어 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정도다. 일본 생활 첫 해 통역이 있었지만 너무 불편했다. 음식조차 혼자 못 시켜먹으니 답답했고… 첫 시즌 후 틈만 나면 연습장에도 일본어를 적어가서 외웠다. 선수들과도 손짓, 발짓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말이 늘었고 적응도 수월해졌다. 후배들도 외국어를 배우기를 권한다.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
선동열 감독의 현역 시절 11년간 통산 방어율은 1.20. 1996년 이후 일본 생활 4년간 평균 방어율도 2.70에 불과하다. "너무 비인간적(?)인 기록 아닌가요? 젊은 후배들이 지레 기죽어 야구를 제대로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멋쩍게 웃던 선 감독은 "그야 뭐, 하다보니 그리 된 거고…."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기억에 남는 경기는.
▷삼성과 만난 프로 첫 데뷔전이 기억난다. 인연이란 게 참 묘하다. 상대 투수는 김일융 선배였다. 7회까지 잘 던지다 8회에 5실점, 5대2로 졌다. 그래도 그 패배가 약이 됐다. 87년엔 8회 투아웃에서 안타를 맞는 바람에 퍼펙트게임 달성에 실패한 경기도 있었다. 13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내 공을 친 타자는 (장)효조 형이었다.
-일본 진출 첫 해 2군으로 추락한 때가 선수 생활 최대의 위기였나.
▷맞다.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커 더 안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문에 2군 선수들의 형편에 대해 잘 알게 됐다. 남은 선수 생활 뿐 아니라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일찍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면 박찬호보다 더 잘했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자. 나도 늦게나마 운이 좋았다고….
외국은 꿈도 못 꿨던 선배들을 생각하면 나도 복 받은 사람이다. 또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 것 아닌가(웃음).
-다시 태어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직업은.
▷역시 야구 선수다. 내 통산 방어율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방어율은 투수의 능력을 재는 제1 잣대다.
■야구 감독 선동열
"(선 감독이) 농담처럼 말한 계약기간 모두 우승(5연패)도 가능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웃기만 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2위는 의미가 없다며 전지훈련 강도를 더 높이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픈' 것 같았다.
-타자를 안 믿는다는 말을 언론을 통해 해 선수들을 너무 기죽이는 것 아닌가.
▷언론을 통해 일부러 쓴 소리를 한다. 선수들 스스로 신문을 읽고 느끼길 바라서다. 실제로는 선수들과 친한데…. 특히 (양)준혁이나 (김)한수, (배)영수는 나와 농담도 잘 주고 받는다.
-김재박 LG 감독이 지난해 말 삼성에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감독 취임 때 선수들에게 '삼성은 7개 구단 공동의 적이니 우리에게만큼은 야구가 시합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이해한다. 오히려 좀 더 크게 보면 팬들의 관심을 야구에 집중시키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재박이 형은 선배이고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 다른 감정은 없다.
-아직 대구 출신 스타 감독을 원하는 시각이 있다. 대구에서 SK와 경기할 때 이만수 SK수석코치를 외치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만수 형이 대구 야구 최고 스타인 걸 잘 안다. 홈팬들이 우리 쪽에 오히려 야유를 보낼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우리는 좋은 플레이를 하는 데만 집중하겠다. 최선을 다하면 팬들이 알아 줄 것이다.
다만 야구장 좀 새로 짓자. 콘크리트 바닥에서 무슨 제 실력이 나오겠나. 시민들에게 야구보러 오시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올해도 '지키는 야구'인가.
▷과거 결정적 고비에서 무너지는 것이 삼성의 징크스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징크스가 아니라 타격에만 의존한 야구의 '한계'다. 우승하기 위해 바꿨던 것이다. 투수도 키우고….
물론 나도 보다 호쾌한 야구를 하고 싶지만 노쇠한 타선이 문제다. 배영수가 올 시즌에 뛸 수만 있어도 외국인 선수 2명 중 1명은 타자로 골랐을 것이다. 지역에서 괜찮은 타자 자원도 좀처럼 안 나온다. 일단 이번 전훈기간 타자들을 호되게 훈련시키며 트레이드도 추진하겠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선 감독과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지기 전 식당 종업원이 사인을 받으러 와도 그는 싫은 내색 없이 펜을 들었다. "어딜 가나 이럴 텐데 귀찮지 않습니까?"라는 물음에 선 감독은 "그래도 알아봐 줄 때가 좋다고 생각해야죠."고 했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 약력
□1981년 광주제일고 졸 □1985년 고려대 졸 □1985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1989~1991년 3년 연속 투수 3관왕 □1996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입단 □1997년 일본 정규 시즌 최다 세이브포인트 신기록(38SP) 수립 □1999년 선수 생활 은퇴 □2000년~2003년 KBO 홍보대사 □2003년 주니치 드래곤즈 코치 연수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투수 코치 □2005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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