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386비판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 출간 이문열씨

"우리 시대가 이상해졌습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형하는 인간'을 빗댄 것일까. 대통령 탄핵 가결 등 우리 사회의 주요사건을 거론하면서 현 정권과 386세대 정치인들을 비판해 출간 전부터 논란을 빚은 장편 '호모 엑세쿠탄스'(전 3권·민음사)의 소설가 이문열(59) 씨가 미국에서 귀국해 2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6년 만에 나온 이 씨의 신작. 인간에게 '호모 엑세쿠탄스' 즉'처형하는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속성을 부여한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투쟁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해방과 구원의 문제를 밀도 있게 성찰한 작품이다.

이 씨는"인간의 얘기를 하는 소설이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다"면서 "빈부 격차와 노동 탄압 같은 자본주의의 그늘이나 군사정권 또는 권위주의 통치,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없는 소설이 과거에 도대체 소설 행세나 할 수 있었던가?"라고 반문했다.

또 자신이 보수우파로 불리는 것과 관련해 "남들이 그렇게 결론 내린 지 이미 10년이 지났다"면서 "좌파, 중도만 있으면 재미 없을테니 내가 기꺼이 보수, 우파로 불리는 짐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날 책 서문을 직접 낭독하며 "이 책에 투영된 정치적 견해가 마치 용서 못할 문학적 반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욕부터 하고 덤비는 까닭을 알 수 없다"며 "막말로, 엎어져도 왼쪽으로 엎어져야 하고, 자빠져도 진보 흉내를 내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3년 전 소설을 구상할 때 우리 사회의 종말론적 인식에 주목했고, 여러 코드 가운데 묵시록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이 묵시록은 닫힌 종말이 아닌 창조·복원으로 새롭게 열릴 세계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서 "정치적 부분이 전부인양 부각돼 불안하고 초조하고 난감했다"며 "소설 전개 방식에도 신경을 쓰는 등 재미있는 소설을 쓰려 했다"고 강조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위 386세대로 대학 시절 한때 운동권이었던 서울의 한 증권회사 과장이다. 2003년 대통령 선거 바로 전 막달라 마리아의 현신이라 볼 수 있는 '마리'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고 이후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보일러공과 적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시민단체 '새여모'의 무리들이 그의 주변에 출몰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

이 씨는 "어떤 이는 현실 정치를 풍자한 정치소설로 생각하는데, 그런 내용이 들어간 부분은 원고지 2천800장 분량 가운데 200장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항간의 논란을 의식한 듯 머리말에도 "문학평론가라기 보다는 설익은 정치평론가 여러분, 아니 지각한 좌파 논객 제군, 제발 소설을 소설로 읽어달라"고 덧붙였다.

또 "대구는 내 문학의 고향이나 다름 없다"며 "'호모 엑세쿠탄스'에는 지역을 떠나 동시대에 같이 고민해야 할 거리가 많다"고 대구 독자들에게 한마디 했다. 이 씨는 오는 2월 보스턴으로 떠날 예정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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