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아부의 기술

아부의 기술/리처드 스텐걸 지음/임정근 옮김/참솔 펴냄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들이 모두 '예'라고 말할 때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정답은 '아~예~'(최대한 비굴하게)이다. 불황과 취업난에 나온 신종 생존법. 따개비처럼 납작 엎드리자는 자조 섞인 유머이다.

아부. 과연 나쁜 아첨인가, 아니면 처세의 윤활유인가.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스미스 서티스는 "야단을 맞아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된 사람보다 칭찬을 받고 착한 일을 하게 된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누군가를 격려할 목적으로 과분한 칭찬을 해 줄 때가 있다.

초대 받은 만찬에서 "음식이 아주 맛있었어요"라거나, 갓난애를 보고 "애가 어쩜 이렇게 예뻐요?", 새로 온 신입여사원에게 "옷이 아주 잘 어울리는데"라고 말한다. 마음에 없더라도 이젠 예의바른 인사말로 굳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TIME'의 수석 편집장을 역임한 지은이는 이것까지 아부라고 정의했다. 아부는 '전략적 칭찬'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게임룰이라는 것이다.

영어 '아부'(flattery)의 어원은 '평평하게 하다, 부드럽게 하다, 살짝 만지다'라는 프랑스어 'flater'에서 나왔다. 한글사전에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이란 짧은 뜻풀이만 있다. 그러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아부'(flattery)의 뜻을 무려 10개나 소개하고 있다. 그리스 시대에 아부는 심각한 도덕적 타락으로 여겼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이르러 애교 섞인 결점 정도로 강도가 약화되더니, 20세기에 이르러선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표현하는 것', '실수를 그럴듯하게 얼버무려주는 것' 심지어 '대범하고 관대한 행위'로까지 설명하고 있다.

지은이는 아부를 '무공해 웰빙 푸드'라고 주장한다. 아부야 말로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향수라는 것이다.

마키아 벨리, 몽테뉴, 워싱턴, 프랭클린, 링컨, 프로이트로 시작해 앤디 워홀, 로널드와 낸시 레이건 부부, 클린턴, 스티븐 스필버그, 더스틴 호프만, 샤론 스톤에 이르기까지 아부를 예술처럼 멋지게 쓴 인물들의 족적을 더듬었다.

지은이는 아부가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주장한다. 신분상승의 밑거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와 권력에 뜻을 품은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정치 1번지에는 아부의 꿀이 흐르고, 미국 백악관에는 언제나 '아부의 드림팀'이 건재해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민주주의의 거목 조지 워싱턴을 '미국식 아부의 원조'라고 극언했다.

버지니아 민병대의 중령으로 진급하려는 그는 1757년 북미 영국군 사령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존경하는 사령관 각하! 제가 아부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사실 저는 사령관 각하의 인격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며, 평소 각하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 워싱턴을 이 편지를 보낸 후 곧바로 승진했다.

아부는 거짓말과 달리 탄로가 나도 처벌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부는 가장 저렴한 뇌물인 셈이다.

시대별로 또는 지역별로 아부의 역사를 현란하게 그려낸 것도 그렇지만, 인류학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아부를 종횡무진 해부하고 있다. '아부의 종합적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지은이는 '아부가 없는 사회처럼 즐거움이 메마른 대지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적고 있다. 448쪽. 1만9천7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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